ADVERTISEMENT

내 휴대전화 뒷자리 '7777'로 바꾸려면?... '골드번호' 추첨 노려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장동호(47) 씨는 최근 거래처 직원 A씨와 인사하다가 깜짝 놀랐다.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었다며 A씨가 새로 건네준 명함엔 ‘7777’이라는 네 개의 뒷자리가 적혀 있었다. “이런 귀한 번호를 어떻게 얻었느냐”고 묻자 A씨는 웃으면서 ‘방법’을 알려줬다.

이동통신 3사, 연 2회씩 골드번호 추첨 행사 #불법 매매 근절되면서 응모 경쟁도 치열해져 #'0000' 최고 인기... '8888' '1004'도 꾸준

내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를 7777처럼 남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른바 ‘골드번호’로 바꾸려면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연 2회씩 마련하는 추첨 행사를 활용하면 가능성이 높아진다. 6일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KT와 LG유플러스는 휴대전화 골드번호를 각각 5000개씩 걸고 추첨 행사를 연말까지 진행 중이다.

이동통신 3사는 소비자들에게 인기인 '골드번호' 추첨 행사를 연 2회씩 마련한다. [중앙포토]

이동통신 3사는 소비자들에게 인기인 '골드번호' 추첨 행사를 연 2회씩 마련한다. [중앙포토]

번호 변경을 원하는 소비자는 각 이동통신사의 전국 대리점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응모할 수 있다. 단, 골드번호를 이미 쓰고 있거나 최근 1년 이내에 추첨 행사에서 당첨된 이력이 있다면 응모할 수 없다. 당첨되면 이동통신사별로 정한 기간 내에 가까운 대리점을 방문해 해당 번호로 변경하면 된다. KT는 이달 20일까지, LG유플러스는 17일까지 응모 마감을 하며 당첨자 발표는 각각 27일이다. 앞서 SK텔레콤도 지난 10월에 골드번호 1만개를 추첨해 당첨자들에게 배포했다.

골드번호 추첨은 한정된 희소 번호 개수와 갈수록 늘어나는 희소번호 소유욕 사이에서 생겨났다. 휴대전화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이후 가입자들 사이에서 선점 경쟁이 치열해졌다. 당시 네이버 등 포털 게시판엔 “이 번호가 100만원이라는데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번호냐” “내가 가진 골드번호를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겠느냐” 등의 문의 글이 빗발쳤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가이거나 자기 PR이 중요한 직업인 경우 골드번호를 자신의 이익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배경을 분석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건을 사거나 팔 듯 전화번호를 음성적으로 매매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거래를 중개하는 온라인 웹사이트가 생겨나, 번호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최대 억대 가격에 거래될 정도였다.

정부는 공정한 분배를 위해 2006년 처음으로 이동통신사 추첨 방식을 도입했다. 하지만 추첨을 통해 받은 골드번호를 ‘번호 변경’ 식으로 맞교환하는 개인 간 불법 매매가 음지에선 여전했다.
이에 정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 ‘누구든 유한한 국가 자원인 전기통신번호를 매매해선 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지난해 7월부터 시행했다. 이를 위반하고 골드번호를 개인 간 거래할 경우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내린다. 그러면서 이동통신사별 추첨 행사를 통해서만 골드번호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또 개인의 번호 변경도 가족 간 명의 변경과 같이 부득이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제한했다.

이동통신 3사는 소비자들에게 인기인 '골드번호' 추첨 행사를 연 2회씩 마련한다. [사진 LG유플러스]

이동통신 3사는 소비자들에게 인기인 '골드번호' 추첨 행사를 연 2회씩 마련한다. [사진 LG유플러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추첨이 진행되다 보니 경쟁률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SK텔레콤이 10월 추첨에서 기록한 가장 높은 경쟁률은 5321대 1. 자기 휴대전화 국번과 뒷자리가 동일한 번호(ABCD-ABCD형)를 쓰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몰렸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전체 응모자의 54%는 숫자 네 개가 연달아 나오는 AAAA형을 신청했다”며 “단일 국번 중엔 천사를 상징하는 ‘1004’가 전체의 약 10%가 신청했을 만큼 인기였다”고 말했다. 가족 중에 노부모나 아이들이 외우기 쉬운 번호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1004를 신청한 경우가 많았다.

KT와 LG유플러스의 경우 9월 추첨 행사에서 ‘0000’이 각각 최고 경쟁률을 기록해 인기를 실감했다. ‘8888’도 인기였다. KT 관계자는 “중국에서 숫자 8에 열광하다 보니 중국과의 교류가 잦은 기업인이 많이 신청했다”고 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예컨대 ‘8282’ ‘8949’ ‘4989’처럼 발음이 일상어와 비슷해 친숙한 번호들도 꾸준한 인기”라고 설명했다. 개인택시를 운영하거나 보험과 제약 등의 영업을 하는 직업일수록 신청을 많이 했다.
특정 번호에 특정 직업군이 대거 쏠리는 경우도 있다. ‘2580’을 신청한 직장인 중엔 기자가 많았다. ‘시사매거진 2580’이라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이 숫자가 제보 대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골드번호는 한 사람 당 1개의 번호만 신청해 응모할 수 있다. 모든 추첨 행사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 등이 참관해 공정성을 기한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