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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때아닌 좌익 소탕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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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필리핀 경찰청은 28일 호세 마리아 시손 등 공산당 지도부 4명을 포함한 50명의 좌익 지도자를 쿠데타 등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라파엘 마리아노 하원의원 등 좌익계열 상.하의원 7명도 포함됐다. 경찰은 마리아노 의원 등 쿠데타 모의 혐의가 명백한 4명은 곧 국회에서 연금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좌익계열의 사투르 아참포 하원의원은 "현 정부의 탄압을 받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며 앞으로 대정부 투쟁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25일부터 정간 상태인 유력지 데일리 트리뷴지가 2003년부터 좌익세력과 연계해 근거 없이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며 관련자들에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27일 밝혔다.

이와 관련, 필리핀 인콰이어러 등 신문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지난 10년 동안 소강상태인 좌익세력의 대정부 무장투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28일 보도했다. 특히 1968년 필리핀 공산당(CCP)을 만든 시손에 대해 정부가 쿠데타 혐의를 적용하는 바람에 공산반군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손은 73년 공산당의 통일전선조직인 민족민주전선(NDF)을 만들어 대정부 무장투쟁을 벌여왔으며 정부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92년부터 네덜란드에 망명 중이다.

좌익무장세력은 95년 정부와 화해협약을 체결해 그동안 대정부 투쟁이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취임 뒤 이슬람 반군 소탕에 집중하는 사이 좌익세력은 힘을 키워 현재 무장대원을 1만 명까지 늘린 상태다.

한편 24일 시작된 국가비상사태 해제를 놓고 필리핀 내각이 양분됐다. 상공무역부 등 경제 부처 장관들은 경제 악영향을 우려해 가능한 한 빨리 비상사태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인데 반해 국방과 경찰 관련 부처는 쿠데타 세력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마닐라=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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