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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국가 CEO'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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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ARD 방송과 일간 디벨트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에 대한 업무 수행 만족도는 80%에 이른다. ZDF방송의 정치인 호감도 조사에서는 평점 2.2(점수는 최고 5점, 최저 -5점)를 받았다. 역대 총리들 평균치(0.5점)보다 4배나 높은 점수다. 지난해 9월 18일 총선 이전에 유권자의 75%가 메르켈이 총리가 되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일이다.

◆ 수퍼스타=주간 벨트암존탁은 메르켈을 독일의 새로운 '수퍼스타'라고 소개했다. 평소 독일 정치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조차 "메르켈 총리가 촌스러운 동독 여자라는 이미지를 벗고 높은 인기를 누리는 세련된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의 인기는 외교무대에서 독일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데다 침체에 빠졌던 경제가 올 들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 직후 그는 외교 역량 강화에 주력했다. 짧은 기간에도 실적을 거둘 수 있는 데다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나라 안팎에 과시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물리학자다운 실용적 접근이 적중한 셈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파이낸셜 타임스 등 유력 언론들은 하나같이 외교 분야에서의 성과를 메르켈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

◆ 외교무대 성공적 데뷔=국제 무대 경험이 전혀 없다시피한 그가 지난 100일간 보여줬던 활약은 눈부셨다. 외교 무대 첫 데뷔는 지난해 12월 유럽연합(EU) 정상회담. 그는 회원국 간 이해가 엇갈려 해결 기미가 안 보이던 차기 예산안 협의과정에서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1월 중순 미국을 방문해 이라크전쟁으로 한참 멀어진 양국 간 거리도 상당히 좁혔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대해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의 테러범수용소 폐쇄를 요구함으로써 할 말은 한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 뒤 바로 러시아로 날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그는 여기서도 러시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인권문제나 체첸사태를 빠뜨리지 않았다.

◆ 대연정도 잘 이끌어=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 간 대연정을 무난하게 이끌고 있는 점도 평가받고 있다.

연정 협상 과정은 진통이 컸으나 메르켈은 일단 연정이 출범한 뒤에는 합의문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조치가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 혜택 감소 정책도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다.

여기에 힘입어 경제와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뮌헨의 IFO 경제연구소가 내놓은 기업환경지수 등 각종 경기지표가 좋아지고 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론도 확산하고 있다.

주간 슈피겔 최신호는 또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메르켈이 전임자인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국민에게 다가선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슈뢰더는 재임기간 화려한 말솜씨와 요란한 대내외 활동으로 '미디어 총리'란 별명을 얻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메르켈은 조용하면서도 서민적인 스타일로 국민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직 메르켈호의 성공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기는 했지만 실업자가 다시 5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4분기 독일 경제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메르켈은 총리에 취임하면서 일자리 늘리기에 진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의 성패는 실업난을 얼마나 해소하고, 장기 불황에 빠진 경제를 얼마나 이른 시일 내 되살려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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