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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잃은 여성에게 '재활 둥지' 제공 2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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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시 평창동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이르면'나자렛 성가원'이란 간판이 내걸린 5층짜리 건물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오갈데 없는 미혼모,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여성 40여 명이 재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훈련을 받거나 진학을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곳을 운영하는 이는 숙명여대 이인복(68) 명예교수다. 그가 불우 여성을 돕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자신의 집에서 성매매 여성 두 명을 돌본 것이 계기였다. 이들을 돌보기에는 자신의 집이 턱없이 좁자 2002년 남편인 심재기 전 서울대 교수의 퇴직금과 저금 등을 모두 합쳐 아예 성가원 건물을 지었다. 자신의 봉급과 저서 10여 권에서 나오는 인세와 강연료 등을 전액 성가원을 위해 사용했다. 2년 전부터는 성가원 운영비(월 4000여만원) 마련을 위해 면요리 전문점인 '누들인하우스'와 갤러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가 소외된 여성을 돌보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

이 교수가 열세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아버지가 납북되고 오빠와 남동생도 실종됐다.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 다섯과 정착한 곳이 경기도 부평의 미군부대촌이었다.

이 교수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웠지만 어머니는 기지촌 여성들에게 수시로 식사를 제공했다"며 "어머니의 봉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75년 65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는 "미혼 임부와 갈곳 없는 여성을 모른 체하지 말고 돌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교수 부부는 2003년 충북 청원군에 있는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도 졸업했다. 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사회복지사 자격이 없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돈댁의 양해를 얻어 큰딸의 혼수비용을 뇌성마비 환자의 집을 짓는 데 썼다. 둘째 딸의 혼수비용은 장애인의 집을 짓는 데, 셋째 딸의 혼수비용은 나자렛 성가원 기금을 충당하는 데 사용했다. 막내 딸의 혼수비용은 성당 건축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교수 부부의 네 딸과 사위들은 이들 부부의 회갑 잔치 때 부모의 재산을 성가원에 기부하는 데 동의한다는 재산 포기각서에 날인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8일 충남도로부터 제5회 유관순상 수상자로 선정돼 상패와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충남도 지영애(55) 여성정책관은 "이 교수의 삶이 민족에 대한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일관한 분께 수여키로 한 유관순상 설립 취지에 걸맞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삶이 구겨진 여성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을 보면 항상 마음이 뿌듯하다"며 "노인.청소년.어린이 등을 위한 사회사업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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