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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제2의 인터넷, 탈정부 가속화될 것"…미래학자 돈 탭스콧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디지털 이코노미』『디지털 캐피털』『위키노믹스』 등 다수의 경영 저서를 집필해온 돈 탭스콧은 지난해 아들 알렉스 탭스콧과 함께 『블록체인 혁명』을 펴냈다. 그의 저서는 전세계 블록체인 열풍에 도화선이 됐다. [사진 탭스콧그룹]

『디지털 이코노미』『디지털 캐피털』『위키노믹스』 등 다수의 경영 저서를 집필해온 돈 탭스콧은 지난해 아들 알렉스 탭스콧과 함께 『블록체인 혁명』을 펴냈다. 그의 저서는 전세계 블록체인 열풍에 도화선이 됐다. [사진 탭스콧그룹]

“19세기에 자동차가, 20세기에 인터넷이 나왔다면 21세기에는 블록체인이 있다. 정부가 이런 새로운 기술 흐름을 규제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블록체인 혁명』 쓴 미래학자 탭스콧과의 e메일 인터뷰 #"디지털 봉건주의 혁파하고 데이터·자본의 민주화 실현" #"정부가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 규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캐나다 출신의 돈 탭스콧(70)은 오래전부터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가져오는 변화를 예측해온 저명한 미래학자다. 그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하기 전인 1995년 "인터넷은 전통적인 제품 생산과 마케팅 방식을 모두 바꿀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 정보기술(IT)을 공기처럼 호흡하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는 젊은이(1977년~1997년생)을 가리켜 ‘N(넷)세대’라는 지칭한 것도 탭스콧이 처음이다.

『디지털 이코노미』(1995)·『디지털 캐피털』(2000)·『위키노믹스』(2006) 등 다수의 경영 저서를 집필한 그는 지난해 아들 알렉스 탭스콧과 함께 『블록체인 혁명』을 펴냈다. 탭스콧은 투자은행(IB) 출신인 알렉스와 함께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블록체인 리서치 연구소’(BRI)를 설립하기도 했다. 『블록체인 혁명』은 지난 1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며 올해 들어 국내에서 불기 시작한 ‘블록체인 열풍’의 도화선이 됐다.

돈 탭스콧과 아들 알렉스 탭스콧. 탭스콧 부자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연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블록체인 리서치 연구소(BRI)를 설립했다. [사진 탭스콧그룹]

돈 탭스콧과 아들 알렉스 탭스콧. 탭스콧 부자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 연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블록체인 리서치 연구소(BRI)를 설립했다. [사진 탭스콧그룹]

탭스콧은 지난 1일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열풍부터 언급했다. 그는 “비트코인 광풍이 부니까 블록체인도, 비트코인도 그냥 여러 자산 중 하나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자산 이상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이란 정보를 담은 ‘블록’을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에게 똑같이 분산시켜서 암호화ㆍ저장하는 기술이다. 10분마다 새로운 거래 정보를 담은 블록이 계속 연결된다는 뜻에서 ‘블록체인’이라고 부르게 됐다. 중간 관리자 없이 거래 당사자 간에 직접적인 거래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나의 장부를 꽁꽁 포장해 숨기는 것보다 거래 당사자들에게 똑같은 거래 장부를 갖게 해 위조를 어렵게 했다.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하고, 여러 곳에 동시에 저장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장점도 있다.

올해 들어 1000% 가까이 급등하면서 현재 시가총액만 1700억 달러(약 184조원)에 육박하는 암호화폐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비트코인은 전통방식의 은행처럼 하나의 중앙 서버에 모든 정보를 몰아넣지 않고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하는 ‘가상 장부’에 거래 내용을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탭스콧은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했을 때 커피 가격이 실제로 결제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일 정도다. 여전히 전통 은행들은 해외 송금에서 20% 가까운 수수료를 떼간다. 금액이 많을수록 송금할 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장벽, 불합리함에 대한 욕구가 블록체인 열풍을 만들어냈다.”

탭스콧은 블록체인의 특징으로 ^탈중앙화 ^분산된 권력 ^프라이버시 ^무결성(데이터가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변경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는 특성) ^보안성 등을 꼽았다. 그는 디지털이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을 일찌감치 내다봤지만 “소수의 손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것을 부추겼다”며 디지털의 한계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그는 “우리의 데이터를 페이스북 같은 ‘데이터 시추사업자들’이 몽땅 들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오늘날 사회에서 프라이버시가 곧 자유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관련한 개인 정보와 데이터를 이제 본인이 직접 소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인생을 계획해 갈 것”이라며 “개인이 직접 화폐와 데이터를 주조하게 되는 등 ‘디지털 봉건주의’를 혁파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록체인의 활용 범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대형 마트 체인 월마트는 제품 전체의 공급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자사가 유통하는 상품에 문제가 생긴 즉시 어느 과정에 원인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2014년 덴마크의 정당 자유연합은 정당 최초로 선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탭스콧은 “이미 전 세계 국가ㆍ기업들이 블록체인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있다”며 “블록체인 생태계를 얼마나 빨리 형성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규제 당국이 ICO(새로 암호화폐를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를 전면 금지하는 등 국가별로 규제를 강화하는 데 대해서도 비판했다.

“19세기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영국에서는 ‘운전자는 반드시 자신의 차량 앞에서 걸어가면서 붉은 깃발을 흔들며 보행자들에게 경고하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했다. 자동차와 도로 교통안전을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붉은 깃발 법’과 비슷한 실수를 또 반복하는 국가들이 있다.”

탭스콧은 “한국이야말로 블록체인이 자리 잡기 가장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 전체가 ‘혁신 DNA’를 가지고 있으며 디지털에 대한 시동을 일찌감치 걸었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만 잘 활용하면 세계를 이끄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을 활용한 자금 세탁·다단계 등의 각종 범죄가 늘어나는 데 대해서도 탭스콧은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자동차부터 스마트폰까지 새로운 기술과 도구가 나올 때마다 범죄자들이 가장 먼저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구상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든 거래 기록을 공유한다는 블록체인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며 "자금 거래 흐름을 역으로 추적하는 등 사법기관에서 긍정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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