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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북한 땅 밟는 유엔 사무차장…‘중재자 역할’ 해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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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펠트먼(58)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5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북한을 방문한다. 유엔 사무차장급 고위 인사의 방북은 7년 만으로 그 만큼 그의 방북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북ㆍ미 관계에 전환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제프리 펠트먼(오른쪽) 사무차장이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4월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제프리 펠트먼(오른쪽) 사무차장이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펠트먼 사무차장이 북한을 방문해 상호 이해와 관심사를 논의할 것”이라며 “이용호 외무상과 박명국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만날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펠트먼 사무차장 나흘 일정으로 5일 방북 #이용호 외무상 등 만나 핵이슈 등 논의할 듯 #유엔 관계자 "펠트먼 방북은 미국과도 협의 거친 것"

두자릭 대변인은 이용호 외무상이 지난 9월 유엔총회 기간에 펠트먼 사무차장을 북한으로 초청했고, 지난달 30일 방북이 최종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유엔 안팎에선 펠트먼의 방북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6차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9일엔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5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유엔 소식통은 "북한이 자신의 스케줄 대로 핵무기와 ICBM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이후 펠트먼 사무차장이 방북하는 것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이 비대칭전력을 통해 미국이 무시하지 못할 전력을 갖췄다고 판단할 수 있는 만큼 북한이 유엔을 통해 핵협상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평소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유엔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이에 따라 펠트먼의 이번 방북이 상황에 따라선 향후 구테흐스 총장의 북한 방문의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두자릭 대변인도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필요하면 언제든 (북한 문제에서) 중재역할을 맡을 준비를 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구테흐스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엔 김정은과의 회담이 당연히 이뤄질 것이고, 북한은 이를 활용해 유엔을 통한 대미 압박 외교전을 벌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북한이 유엔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대화 환경을 조성한 뒤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을 오히려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테흐스 총장이 방북하게 되면 1979년 쿠르트 발트하임 사무총장, 1993년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에 이어 유엔 사무총장으로는 3번째로 북한 땅을 밟게 된다. 반기문 전 총장은 재임 시절인 2015년 5월 개성공단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북측이 돌연 방문 허가를 철회해 무산된 바 있다.

유엔 외교가에선 펠트먼 사무차장이 미국 외교관 출신이란 점도 북한에겐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차례 트럼프 정부의 정확한 대북 정책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전현직 미 고위급 인사들과의 접촉을 시도했었다.
펠트먼 사무차장이 공식적으론 유엔 소속으로 방북하지만 그의 미 외교관 경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반 전 총장 때부터 사무차장을 맡아왔던 펠트먼은 북한 측으로부터 방북 제의를 여러차례 받았다고 유엔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 2016년엔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펠트먼 사무차장에게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한반도 문제 관련 유엔 총회 결의이행에 유엔 사무국이 기여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방북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적도 있다. 하지만 당시 펠트먼 사무차장은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일부러 반 전 총장보다 한 발 떨어져 있다고 한다.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은 지난 2010년 2월 당시 린 파스코 유엔 사무국 정무담당 사무차장 이후 7년만이다. 2011년 10월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HCA) 발레리 아모스 국장이 방북한 게 유엔 고위급 방북의 마지막이었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오른쪽) [EPA=연합뉴스]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오른쪽) [EPA=연합뉴스]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대사는 “엄중한 시기에 북한과 채널 하나를 열어놓는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방북”이라고 진단했다. 또 "펠트먼의 방북이 북한의 일방적 선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이번 방북이 미 정부와 협의를 거쳐 성사된 만큼 북한도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다. 따라서 악의적인 선전에 악용될 가능성은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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