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약사회 간부가 4일 정부 회의장에서 칼로 자해하는 소동을 부린 것으로 밝혀졌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 확대를 반대하면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한다.
4일 편의점 상비약 13개 조정 위한 위원회서 #상비약 확대 반대 주장하며 과도로 소동 #최종안 내려했지만 '안전성' 이유로 약사회 반대 #지사제·제산제 추가하는 절충안으로 의견 모여 #불상사 없었지만 이날 회의는 소득 없이 마무리 #다른 위원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강하게 비판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에선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시민단체ㆍ약학계ㆍ의학계 등 10명이 참여했다. 위원회는 편의점에서 파는 상비약의 품목 조정을 논의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구성된 공적 협의체다. 현재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상비약은 감기약·소화제 등 13개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ㆍ식품의약품안전처는 회의에 배석만 할 뿐 참여하진 않는다.
지난 3월 처음 시작된 회의는 이날 다섯 번째로 열렸다. 지난 10월 열린 4차 회의에선 이날 최종안을 마무리 짓고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그러자 ‘안전성’을 이유로 편의점 판매 의약품을 늘려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약사회 회원들은 회의 시작 전부터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상비약 품목 수는 그대로 두되 지사제(스멕타)·제산제(겔포스)를 추가하고 소화제 2개를 제외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약사회의 반대를 감안해서 인공누액ㆍ알러지약(항히스타민제)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약은 추가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수 위원의 동의 하에 이를 표결에 붙이기로 했다.
그러자 반대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온 강봉윤 약사회 정책위원장(약학계 위원)이 갑자기 외투를 벗은 뒤 품에 있던 과도를 꺼내 책상 위에 꽂았다. 그리고는 와이셔츠를 풀어헤쳐 내복 차림의 배를 보이면서 과도로 찌르려 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위원들이 극구 말리면서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한바탕 아수라장을 거친 뒤에 아무 결론 없이 마무리됐다. 다음 회의 일정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다. 강 위원장은 회의장을 빠져나가면서 "표결 처리 강행을 저지하기 위해 강경 수단을 썼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위원회 위원은 "약사회는 다섯 차례의 회의 내내 안전성만 강조하면서 다른 논의는 듣지도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도 최대한 약사회의 의견을 고려해서 절충안을 냈다"면서 "회의 도중 갑자기 칼이 나오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공식적인 정부 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다른 위원을 협박하는 건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위원도 "회의장에서 칼까지 꺼낸 건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자해 소동 직후 시민단체와 약사회가 각각 '직역 이기주의' '요식 행위 거부' 등을 내세우면서 상비약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위해 상비약의 편의점 판매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해외에서도 약국 외 판매가 보편화된만큼 지사제와 제산제, 항히스타민제, 화상연고 등 4개 품목을 상비약에 추가해야한다는 것이다. 반면 약사회는 "위원회가 품목 확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요식 행위로 회의를 진행했다"면서 "더 이상의 위원회 참여는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논의가 기약 없이 끝나면서 정부도 아쉬움을 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위원회 결론이 나오더라도 정부 행정예고를 통해 사회적 의견 수렴 과정을 또 한 번 거치기 때문에 최종안이라고 보긴 어렵다. 또한 위원회에서 상비약 품목 조정뿐 아니라 심야 약국 운영 등 전반적인 제도 개선도 건의하려 했다"면서 "6차 회의는 일단 이달 중에 열기로 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라 제대로 열릴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