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공무원법 재개정 포기, 선거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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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여당이 어제 개정 경찰 공무원법을 다음달부터 시행키로 전격 합의했다. 지난해 말 바뀐 이 법은 비간부인 순경.경장의 근속 승진 연한을 1년씩 줄이고, 경사의 근속 승진 제도를 신설했다. 그러나 여권 내의 불협화음으로 처음부터 삐거덕거렸다. 청와대가 예산 부담 및 소방 공무원 등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제동을 걸자 정부는 재개정안을 냈다.

그래놓고선 정부.여당이 다시 이를 뒤집었다. 청와대와 협의한 열린우리당이 원안대로 시행하자고 요구하자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니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찰을 달래려는 선심성 행정이란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여당의 갈팡질팡으로 경찰 조직의 혼란만 불러왔고, 당.정.청의 불협화음을 보여줬을 뿐이다.

비간부 경찰 공무원의 승진 여건이 일반 공무원보다 불리했던 것은 사실이다. 누가 경찰의 처우 개선에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개정법에 따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올해만 비간부 경찰 가운데 약 2만 명이 추가 승진 대상자라고 한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5년 동안 약 3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당정은 경찰에 맞춰 곧 소방공무원의 승진 연한도 단축하기로 했다. 이들과 유사한 여건인 교정직 공무원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 뻔하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공무원 수가 크게 늘고 있는데 '직급 인플레 현상'마저 심화되면 그 부담은 누가 지겠는가. 고스란히 국민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승진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경찰도 개정안을 둘러싸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경찰 공무원이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 소원을 냈고, 비간부 경찰들이 조직적으로 간부들에게 반발하는 갈등을 드러냈다. 경찰 내부에선 이번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비간부가 간부로 자동 승진하니까 느슨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폭행 등 치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검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도 남아 있다. 경찰은 이번 기회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