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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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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7위의 위상이다. 앨라배마 공장도 정상 궤도에 접어들고 있다. 다음달 부터는 쏘나타 라인에서 뉴싼타페를 함께 생산한다. 현대차의 경쟁력은 어디까지 왔을까 알아보기 위해 현지 앨라배마 공장과 LA 판매법인 등을 가봤다.

공장 가동률 80% ‘희망 시동’

지난 22일 오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현대자동차 공장. 이 회사 정몽구 회장의 현장 순시를 앞두고 공장엔 긴장이 감돌았다. 그는 이날 "앨라배마 공장은 (환율 급락기를 버텨낼) 마지막 보루"라며 "노사화합으로 세계 최고의 공장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공장 곳곳을 둘러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공장 관계자들이 전했다. 특히 쏘나타 조립라인에서 시험 생산되는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뉴싼타페를 이달 초에 이어 또한번 점검했다. 이 차종은 4월부터 매달 1만대 이상 생산된다.

현대차가 11억 달러를 투자해 지은 이 곳 공장의 가동률이 80%에 달하면서 미국에서 제조 불모지로 꼽혔던 몽고메리도 아연 활기다. 공장 앞 5㎞까지 4차선으로 뻥 뚫린'현대로(Hyundai Blvd.)'를 따라 공장에 들어섰다. 주 정부가 현대차 공장 완공에 때맞춰 2차선을 4차선으로 넓혀주면서 붙인 이름이다. 널찍한 잔디밭과 잘 가꾼 나무 조경으로 공장인지 공원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다.

공장건물 안에 들어서니 청바지.티셔츠 차림으로 나사 조이고 시트 조립 일을 하는 작업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일하면서 잡담 나누고 하는 게 자유스럽게 보이지만 손.몸놀림은 현대차 울산 공장 근로자보다 서툴러 보이는 게 사실이다. 표정은 진지했다.잠시 라인이 섰다. 순식간에 엔지니어 몇 사람이 모여 긴급토의를 하고 몇 군데 손을 본 뒤 라인이 다시 돌아갔다.

이 공장은 생산을 시작한 지난해 5월 이후 서너달 동안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현대차의 최첨단 시설인 충남 아산 공장보다 오히려 자동화율이 더 높지만 로봇들이 사소한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 오작동하기 일쑤였다. 주 정부에서 공공 어학교육을 받았다는 이민 근로자 가운데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 작업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농기구 만지던 사람들이 자동차 부품을 만지니 아무래도 서툴러 툭하면 라인이 섰다. 현지 동반 진출한 11개 부품업체의 불량률도 상당했다. 한 시간에 쏘나타 72대를 생산할 수 있는 첨단 공장에서 시간 당 30여 대 만드는 데 그쳤다. 공장 관계자는"아산공장에 교육을 보내려고 했더니 여권 없는 근로자도 상당수였다"며"작업 자세는 진지했지만 첨단공장에 적응하는데 고충이 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둘지 않았다.품질 최우선이라는 슬로건 아래 생산된 차를 전량 검수했다. 4㎞의 주행 테스트를 기본으로 삼았다.지난해 11월부터 가동률이 70%를 넘어섰다. 정 회장은 '품질 기준에 맞지 않으면 출고 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공장 준공 때 법인장을 맡은 안주수 부사장은 "품질과 가동률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현대 정신'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앨라배마 공장은 쏘나타를 달라는 딜러가 많아 생산량(9만대)이 판매를 따라잡지 못했다. 동급 최고 수준의 편의 장치,6개의 에어백,안전도 별 다섯개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공장 관계자는 "가동률이 거의 정상 궤도에 진입했기 때문에 미 판매법인(HMA)이 뛸 준비가 된 육상선수처럼 긴장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생산목표는 쏘나타 17만대, 싼타페 10만대 등 27만대다.이 물량을 소화하면 가동률이 90%에 달한다. 앨라배마 공장은 수출 위주에서 현지 직접생산-판매 체제로 전환한 현대차의 첫 도전이다. 2010년 목표인 '세계 자동차 4강'이 가능할지를 타진하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몽고메리(앨라배마)=김태진 기자

몽고메리시 경제 효과는

고용창출효과 2만명
실업률 절반으로 뚝

앨라배마 공장은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대차는 다음달부터 몽고메리시 15개 고교에 운전면허 연습용 차량으로 쏘나타를 한 대씩 기증할 계획이다. 앨라배마 공장이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지역사회 후원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앨라배마 공장 총무팀 진의환 부장은 "면허시험용 차량을 타본 학생 중 상당수가 신차를 구입할 때 그 차량을 사기 때문에 자동차 업체들은 앞다퉈 공급하려 한다"며 "지역사회에 기여하자는 차원에서 차량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앨라배마주는 2003년까지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각종 경제지표에서 하위 5위권에 속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대차 등 자동차 공장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상위 10개 주에 포함됐다.

미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용 지표에서 몽고메리시는 현대차 공장 덕을 톡톡히 봤다. 실업률이 지난해 3%로 2년 전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현대차가 3000여 명을 고용했고 현대차에 따라 들어온 43개 부품업체가 모두 7억3000만 달러를 투자해 여기서도 57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겼다. 몽고메리시 관계자는 "현대차 공장이 들어선 뒤 6개의 호텔이 새로 들어섰고 각종 행정서비스 업체까지 잇따라 생겨 연쇄파급 효과까지 감안하면 신규 고용창출은 2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몽고메리시청의 관용차도 현대차로 점차 바뀌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몽고메리에서 현대차 공장에 취직하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길(Road To Success)'이라고 부른다"며 "미국에서 현대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앨라배마 지역사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차 집중 견제

고급 노동력 부족

극복해야 할 과제는

앨라배마주 인근 켄터키주에 있는 도요타 공장은 기자의 방문을 차단했다. 이 공장 관계자는 "이달 중순부터 신차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 교체작업 때문에 다음달 말까지 일절 공장 방문이 안된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선 현대자동차 그랜저(미국명 아제라)와 쏘나타를 견제하기 위한 신형 캠리를 생산하고 있다. 4월 미국에 출시될 이 차종은 차체를 키우고 편의장치를 더욱 손봤다. 앨라배마 공장에서 쏘나타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편의장치=캠리'등식이 뿌리박혀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어느 소비자 조사에서 쏘나타가 캠리를 앞섰다.

현대차는 근래 미국.일본 업체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아왔다. 지난해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된 쏘나타는 GM.포드 등 미 업체들의 할인 판매와 일 도요타.혼다의 공격 마케팅에 밀려 고전했다. 특히 혼다는 지난해 9월 쏘나타를 직접 겨냥해 경쟁차종인 어코드의 모델를 바꾸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지 딜러들은 현대차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신차 쏘나타를 팔면서 1000~2000 달러 가량의 할인 등 인센티브를 소비자들에 주고 있다. 신형 쏘나타 가격을 기존 모델보다 2000달러 정도 올렸더니 판매가 주춤해진 것이다. 우리증권의 안수웅 연구위원은 "미국에서 현대차의 가장 큰 매력은 가격 대비 품질과 편의장치가 좋다는 점"이라며 "일제 차와 비슷한 가격을 받으려면 모터스포츠 등 선진형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30만 몽고메리시의 인력난도 문제다. 주종 산업이 농업이라 첨단공장에 적응할 하이테크 노동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동반 진출한 10여개 부품업체 가운데 두세군데는 전액 자본잠식될 정도인 부품업계의 상황도 문제로 꼽힌다.

켄터키=김태진 기자

“올해 50만대 판매 자신”

미국법인 반즈 부사장

"올해 미국 시장에 신차 5종을 내놔 50만대 벽을 넘을 겁니다."

미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인근 오렌지카운티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미국법인(HMA) 사무실은 활기가 넘쳐 보인다. 마크 반즈(사진) 판매담당 부사장은 "지난해보다 40% 이상 광고비를 늘렸다"며"앨라배마 공장이 정상궤도를 찾으면서 판매목표 달성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차가 미국에 쏟아부은 광고비는 대략 6000억원 정도다.

현대차는 앨라배마 공장 가동에 힘입어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전년 대비 7% 늘어난 45만대를 팔았다.신기록이다. 판매량 기준으로 미국의 빅3(GM.포드.크라이슬러)와 일본 빅3(도요타.혼다.닛산)에 뒤이은 7위다. 올해 목표는 50만대. 지난달 그랜저(미국명 아제라) 신차를 시작으로 ▶4월 뉴싼타페 ▶5월 7인승 레저차량 앙트라제▶6월 3도어 베르나 ▶9월 신형 아반떼가 줄줄이 출시를 기다린다.

반즈 부사장은 "아제라는 BMW7 시리즈보다 실내가 넓고 편의장치가 다양해 관련 광고가 인지도가 높다"고 말했다. 판매 딜러도 연내 695개에서 10% 정도 늘릴 계획이다. 그는 "현대차의 딜러 당 평균 판매대수가 도요타.혼다보다 10% 정도 많아 현대차 딜러 지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즈 부사장은 현대차의 매력 요소로 "현대 브랜드가 JD파워의 신차품질지수 등에서 보듯이 품질이 좋아진데다 쏘나타가 미국 안전도 테스트에서 별 다섯개로 최고 점수를 받은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10년 10만 마일'워런티(보증)도 신뢰를 심었다. LA 현지 디자인연구소가 미 소비자의 성향변화를 제때 파악한 것도 성공요인이다.

뉴싼타페의 성공 여부가 관심거리다. "뉴싼타페는 기존 모델보다 크고 디자인 역시 투싼과 차별화했습니다.도요타의 하이랜더, 혼다의 파일럿보다 품질이 뒤지지 않으면서 값은 15% 이상 저렴해 승산이 있어요."

그는 2008년까지로 예정된 '10년 워런티'에 대해선 "아직까지 중단 여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LA=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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