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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새로운 적폐를 피하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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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되는 성범죄, 폭행, 학대 등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동시에 그 가해자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들에 대한 즉각적이고 철저한 사회적 단죄를 찾게 된다.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만큼이나 흔해진 또 다른 보도들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지난 1년 넘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살았던 시인 박지성이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그 허위 신고를 한 피해자가 오히려 무고죄의 대상이 되었다. 한때 세상을 경악하게 한 어린이집 교사의 바늘 학대 사건도 최근 무죄로 확정됐다. 한때는 우리 모두에게 흉악한 범죄자였던 이 무고한 시민들의 삶이 그동안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집 출간이 중단되고 제자도 떠나고 시인으로서의 삶은 단절됐고, 집 앞에서 피켓까지 들고 시위하는 이웃들이 있었다고 한다. 바늘 학대 사건의 당사자인 교사는 식당일을 전전하고 있고, 그 어린이집 이사장은 심장이 녹는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이들의 망가진 삶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 줘야 할까?

구속 면한 김관진과 전병헌 놓고 #정치 성향 따라 옹호·비판 엇갈려 #과거에도 사법 절차 무시한 탓에 #억울한 유죄 판결 너무 쉽게 내려져 #그것이 바로 적폐이자 청산 대상

그나마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무죄가 밝혀졌으니 운이 좋았다. 유죄가 선고돼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내다가 무죄로 뒤집히는 경우도 찾기 어렵지 않다. 이렇게 잃어버린 삶은 그 잘못된 사법적 판결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삶을 똑같이 망가뜨려도 회복될 수 없다. 그래서 사법 판결의 절차는 어찌 보면 가해자인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보일 정도로 철저하게 규정돼 있다. 무죄 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의 기준, 불구속 수사 원칙 등 인권적 가치에 부합하는 형사사법의 대원칙을 따르는 이유는 간단하지만 명백하다.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라도 억울하게 처벌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허태균칼럼

허태균칼럼

물론 흉악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받는 피의자에게도 그 원리가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는 불편하다. 하지만 그들은 판결 확정 전까지는 ‘혹시나’ 의심받는 것뿐이다. 최종 판결 한참 후에도 무죄로 밝혀지기도 하니, 확정 판결도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보통 법관들이 그 어려운 기준을 고려해도 합리적 의심이 없이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 경우에만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피의자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외쳐도 사회는 그들을 진범으로 간주하고 처벌한다. 그것이 진실을 알 수 없는 현실적 한계에서 인간의 판단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에서 처벌 오류와 무처벌 오류의 갈등을 다루는 사법 체계의 본질이다. 사실 사법 판단도 법관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과정이고, 그 과정은 항상 무오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오류의 위험을 더 감수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사건일수록, 사법 체계는 일반 시민의 요구에 저항하게 된다. 성범죄, 아동학대, 살인과 같은 반사회적 사건은 그 가해자에게 강한 처벌을 반드시 하고 싶은 심리적 욕구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 범인으로 유죄가 확정되는 순간, 그는 중형을 받고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법관은 더 신중해져야 함이 당연하다. 그래서 처벌 오류를 피하고 싶고 어찌 보면 더 높은 유죄 판결의 기준을 적용하게 된다. 처벌 오류를 줄이자니 무처벌 오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범인의 엄벌이 꼭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범인을 처벌하기 더 어려워지는 비극적 역설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최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구속적부심으로 석방되고, 전병헌 전 정무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그 근거로 아직 유죄로 확증할 만한 확신은 들지 않고 도주의 우려가 없다고 밝혔다. 이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아직 재판도 받지 않은 그들의 유죄를 확증하는 증거를 가지고 있을까? 만약 그 결정을 옹호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정치적 성향에 의해 갈린다면, 법관은 어느 쪽과 의견을 같이해야 할까?

과거의 많은 정치적 사건들, 특히 정권의 압력에 의해 좌우된 사건들의 판결이 바뀌는 사례들이 있다. 그 이유는 결국 과거의 판결이 바로 유죄 판결을 어렵게 하는 그 사법 절차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 절차들이 지켜지지 않았기에 억울한 유죄 판결이 너무 쉽게 내려졌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적폐이고 척결의 대상이다. 적폐를 가능한 한 빨리 깨끗하게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신중하고 절차를 지켜야만, 과거의 적폐를 없앴을 때 또다시 없애야 할 새로운 적폐를 만나지 않는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