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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신광렬 판사가 재선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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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관진 석방 사건’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시험하고 있다. 특정 판사들을 겨냥한 대중의 언어폭력과 집권당 국회의원들의 협박이 도를 넘었다. 자기들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인간 모독이고 관찰자 입장에선 민주주의의 위기다. 법적으로 사법 방해에 3권분립을 무너뜨리는 헌법파괴 행위다. 사법부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인 인권과 자유의 최후 수호자다. 3권분립의 요체는 사법부가 입법·행정부의 특권과 권력남용을 견제·감시하는 것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쫓아내고 성립한 촛불 정권에서 밤낮으로 헌법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건 블랙 코미디다.

표현의 자유로 포장된 인간 모독 #김명수 대법원장이 나서야 할 때

문제의 발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정치관여 혐의가 소명됐다”(강부영 영장전담 판사)고 김관진 전 국방장관을 구속하더니 11일 만에 “범죄 혐의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다”(신광렬 구속적부심 판사)며 다시 풀어 준 사건이다. 그러자 김관진이 구속될 때 “이명박을 잡기 위한 법원의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환호하던 네티즌들이 표변했다. 법원이 순식간에 적폐의 소굴이 됐다. “산을 황폐화하는 재선충(材線蟲, 소나무에 기생하며 수개월 만에 나무를 말려 죽이는 벌레) 같은 존재들” “사법부에서 쥐박이의 똘마니들을 정리하라” “공수처를 빨리 만들어 부역자 법관들을 모조리 구속하라”는 글들이 온라인 공간을 점령했다. 마음에 안 드는 판사들을 해충·설치류·부역 분자라며 박멸 대상으로 삼는 언어폭력이다.

집권세력의 엘리트들도 대중의 자제를 호소하기는커녕 그 위에 편승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4선 중진인 안민석 의원은 페북에 “김관진을 도주 우려가 없다고 석방한 판사, 정유라를 영장 기각시킨 적폐 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고 썼다. 영향력 있는 입법부 의원이 특정 유형의 판사들을 찍어 “국민과 함께 욕하고 싶다”니 협박도 이런 협박이 없다. 이 당의 실세인 재선의 박범계 의원은 “우병우와 특수 관계설이 퍼지고 있다. 김관진 석방 결정은 일정한 흐름 속에서 나온 거라고 본다”며 판사 출신답지 않게 음모설을 퍼뜨렸다.

민주당 지도급 인사로 인천시장을 지낸 4선의 송영길 의원도 “신광렬 판사는 우병우와 TK 동향으로 같은 대학, 연수원 동기, 같은 성향”이라고 가세했다. 인권 변호사였다는 송 의원이 헌법 조항으로 금지된 친족 간 연좌제(헌법 13조3항)와 비슷한 지연·학연·취향 간 연좌 심리를 자극할 줄 미처 몰랐다.

김관진의 구속 뒤 석방은 비난받을 일인가. 아니다. 피고인 신체의 자유 박탈 문제가 생길 때 법원은 이해관계자의 요청에 따라 1차 영장실질 심사, 2차 구속적부심사를 한다. 말하자면 구속 2심제다. 재판 3심제가 불완전한 인간이 저지를 유·무죄 판결의 오류를 줄이는 기능을 하는 것과 같다. 특히 구속적부심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12조6항)에 따라 창설된 보석 같은 인권보호 제도다. 헌법적 신성성이 배어 있다.

집권당 정치인들이 판사 공격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본 재판에서 김관진에게 유죄 판결을 받게 해 궁극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감방에 넣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린 것으로 짐작된다. 이럴 경우 사법부는 집권 세력의 시녀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래서 드리는 고언인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헌법 파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사법부와 3권분립을 공격하는 것은 헌법을 테러하는 것입니다. 판사가 양심과 증거·법리로만 재판할 수 있도록 국민이 도와 주십시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