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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홀로코스트와 표현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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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프랑스 극우파 정당인 국민전선의 지도자 장 마리 르펜. 그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상징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가스실은 2차 대전의 디테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 바람에 르펜은 법정을 제 집처럼 드나들고, 집 몇 채 값을 벌금으로 날렸다. 그런데도 색안경을 껴야만 유대인이 보인다는 그의 태도는 여전하다. 르펜처럼 홀로코스트를 이단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을 유럽인들은 '수정주의자(revisionist)' 또는 '부정론자(negationist)'라고 부른다.

영국의 아마추어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어빙. 그는 2차 대전에 대한 수정주의적 역사 해석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어빙은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2차 대전에 관한 30여 권의 책을 냈다. 대표작인 '히틀러의 전쟁'(1977)은 철저하게 아돌프 히틀러의 시각에서 2차 대전을 서술한 책이다. 이른바 내재적 관점이다. 그에 따르면 히틀러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정치인이었다.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43년 말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우슈비츠는 불행히 발진티푸스 때문에 사망률이 높은 강제노역장에 불과했다. 조직적으로 유대인을 말살하는 정책은 없었다. 현재 그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독일.오스트리아.캐나다.호주.뉴질랜드.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낙인찍혀 있다.

지난해 11월 어빙은 오스트리아 잠행 중 체포됐다. 그리고 지난 20일 빈 형사법정에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89년 오스트리아의 한 강연회에서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이 있었다는 얘기는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해 경찰에 수배됐다.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스위스 등 유럽 10개국은 홀로코스트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를 형사범죄로 규정한다. 오스트리아는 최고 10년형이다.

법정에서 어빙은 더 이상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개인기록을 접한 91년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역사는 계속해서 자라는 나무라서 더 많은 자료를 접할수록 더 많이 배우게 된다"며 수정주의자다운 논리를 폈다. 그는 오스트리아인이 아니다. 더구나 문제의 발언은 16년 전 일이다.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법정은 원칙대로 중형을 선고했다. 이런 추상같은 단죄는, 히틀러를 배출했고 홀로코스트에 가담했던 추악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됐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유럽의 이중잣대를 보여준 판결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화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옹호하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치 않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이 이슬람권에서 나오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필요에 따라 꺼냈다 넣었다 하는 주머니 속 공깃돌이 아니지 않으냐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금기(禁忌)의 성역에 가둬두는 배경에 대한 음모론적 시각은 거꾸로 수정주의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빌미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도그마에 대한 도전을 통해 역사는 발전했다는 논리다.

그렇더라도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반인륜적 범죄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것은 사치다. 종교가 신념의 문제라면 역사는 사실의 문제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함으로써 어빙은 사실을 외면했고, 역사를 왜곡했다. 역사에 대한 왜곡은 표현의 자유로 덮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난징(南京)대학살은 사실이 아니며 군대위안부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이번 판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배명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