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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격서’의 생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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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민근 JTBC 경제산업부 차장

조민근 JTBC 경제산업부 차장

북핵 위기에 중국의 사드 보복까지 겹친 지난 9월 말. 한·중 통화스와프의 운명을 묻는 기자에게 외환 당국자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협정 만기가 코앞인데 중국은 만기를 연장하겠다는 확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통화스와프는 필요할 때 서로 자국 통화를 맞바꿀 수 있도록 미리 약속해 두는 계약으로, 외환위기에 대비한 중요한 ‘안전판’이다.

당시 그는 “협상이 정무적 판단에 좌우되는 상황이라 결과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대안으로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추진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슬쩍 떠봤다. 돌아온 답은 애매했다. 그는 “미국이 쉽게 응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다만 여러 가지 대안을 만들어 놓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난달 통화스와프는 연장됐다.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공식적인 서명식도 없이 조심스럽게 합의 사실을 알리는 모양새에 뒷맛은 영 씁쓸했다.

그리고 한 달여가 흐른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캐나다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는 깜짝 뉴스가 나왔다. 순간 ‘아차’ 싶었다. 두 달 전 외환 당국자가 한 ‘애매한 답변’의 의미가 비로소 명확해지면서다.

캐나다와 접촉이 시작된 건 지난 3월이었다고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하던 시기다. 외환 당국은 서둘러 대안을 찾았다. 하지만 일본은 껄끄럽고, 미국은 콧대가 너무 높다는 게 문제였다. 캐나다라는 ‘우회로’는 그런 상황에서 고안됐다. 캐나다는 협상의 걸림돌이 될 만한 복잡한 외교 문제가 없다. 게다가 미국과 이미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놓은 곳이다. 우리로선 캐나다를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의 ‘달러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효과가 있다. 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발표 당일부터 원화 가치는 올라갔고, 한국 국채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떨어졌다.

이번 협정은 시장 안정 효과 외에도 난국을 돌파할 일종의 ‘생존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다. 변화무쌍한 안갯속 같은 환경에선 뻔한 수는 통하지 않는다. 외환 당국의 사례처럼 보다 기민해져야 하고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통상협상에서 유사한 전략을 선보였던 이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다. 10여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할 당시 꿈쩍도 안 하던 미국을 끌어내기 위해 그는 먼저 캐나다에 접근했다. 이제는 한·미 FTA 개정 협상이라는 ‘제2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협상 전략으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를 언급했다. 캐나다와의 통화스와프처럼 ‘허를 찔렸지만 유쾌한 소식’이 자주 들려오길 기대한다.

조민근 JTBC 경제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