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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3층서 던져진 3세·5세 남매 받아 구했다 ‘수퍼 소방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화마속 어린 남매를 맨 손으로 받은 정인근 소방경. 인터뷰 중 아이를 받았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화마속 어린 남매를 맨 손으로 받은 정인근 소방경. 인터뷰 중 아이를 받았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임명수 기자]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정인근 원당119안전센터장 #“아이 내려준 분이 영웅” 공 돌려

화마 속에서 어린 남매를 맨손으로 받아낸 정인근(54·소방경·사진) 인천서부소방서 원당119안전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20일 오전 발생한 인천 서구 한 다세대 빌라 화재 현장에 출동해 3층에서 밑으로 던져진 아이 2명을 맨손으로 받아냈다. 신장암 제거 수술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돼 자기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다.

그가 전한 당시의 현장은 급박했다. 이미 검암119센터 직원들이 출동해 진화 중이었지만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발생한 불이 외벽을 타고 2~3층으로 번지고 있었다. 건물 뒤쪽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 5명이 3층 계단 창문 앞에서 뛰어 내리려 하고 있었다. 연기가 가득차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5~6m가량의 높이라 “뛰어내리지 말라”고 제지하고선 다른 소방관에게 사다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한 남성이 “그럼 아이들이라도 먼저 구해달라”고 말했다. 5살, 3살짜리 남매였다.

당시 아이들을 받아낸 상황을 설명하는 정인근씨.

당시 아이들을 받아낸 상황을 설명하는 정인근씨.

정 센터장은 “아이들은 연기를 마시면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내가 밑에서 받을 테니 내려보내 주세요’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그가 “하나, 둘, 셋”을 외친 뒤 잠시 적막이 흘렀다. “와” 소리와 함께 떨어진 아이는 그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암 수술로 몸무게가 56㎏로 줄어든 그가 4m 높이에서 떨어지는 15㎏의 여자아이를 받아낸 것이다. 두 번째 아이도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

그는 “그때 그 자리에 다른 소방관이 있었더라도 맨몸, 맨손으로 받아냈을 것”이라며 “아이를 밑으로 내려준 그 남성이 우리의 영웅”이라고 공을 돌렸다.

올해로 29년차 베테랑인 정 센터장은 지난달 25일 신장암 수술을 받아 4주의 요양이 필요했지만 2주 만에 복귀해 귀중한 생명을 구했다. 서부소방서는 정 소방경과 그를 도운 남성을 찾아 화재 진압 유공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인천=글·사진 임명수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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