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민들의 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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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8일 하오3시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는 전국에서 모인 3천여명의 축산농민들이 무리무리 몰려 서서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지금도 빚더미인데 또 들여와 소 기르는 촌사람은 아예 죽으라는 거여.」
『더 죽을게 있남. 몇 년 전 소 값 파동에 이미 죽은목숨들인데….」
20대 청년에서부터 60대 노인까지 허름한 옷차림에 너나없이 손마디가 굵은 농민들은 대부분 10여 마리씩 젖소를 기르는 영세낙농가들.『송아지 애써 길러 팔려고 내놓으면 사료 값도 안나와오.』『소 값 떨어져 자살까지 벌어진 게 바로 얼마전인데 또 소 값 떨어 뜨리 겠다는거 아니요.』
농민들은 쇠고기 수입개방발표 후 과천종합청사와 각 도청 앞에서 연일 항의시위를 벌이다 이날 임시국회 개원 날에 맞춰 여의도로 몰려왔다.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려다 대기중인 경찰의 사과 탄 세례까지 받은 농민들은 흥분한 나머지『똥보다 못한 세상』이라며 쇠똥이 든 비닐봉지를 의사당 앞길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답변을 해야할 농수산부에선 아무런 답변이 없고, 선거 때 굽실거리던 의원나리들까지 어디로 갔는지 나와보지도 않으니 누가 우리 이익을 지켜 주겠읍니까.』
일부 농민들은 하오5시쯤 의사당 옆 도로중앙분리 화단에 불을 지르고 길옆 축협빌딩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서야 다소 분풀이가 된 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도 그들의 요구에 대한 확실한 답변은 얻지 못한 헛걸음.
『농촌을 떠나야돼….』백발이 성성한 한 농민의 힘없는 독백. 민주화, 개방압력과 농촌의 현실이 그의 어두운 얼굴 표정에 겹쳐왔다. <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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