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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친 길고양이 치료비 누가 내야할까?…길고양이 소유권 논란

중앙일보

입력

SNS에서 정체 궁금증을 일으킨 길 고양이 [사진 독자 제보]

SNS에서 정체 궁금증을 일으킨 길 고양이 [사진 독자 제보]

차로 친 길고양이의 치료비를 누가 내야 하는지를 두고 운전자와 보험사 간 소송이 붙었다. 핵심은 길고양이를 '지방자치단체의 소유물'로 보느냐, '주인 없는 재물'로 보느냐다. 현행법상 소유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는데, 현재까지 법원(1·2심)은 '주인 없는 재물'로 보고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며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운전자는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입장이다. 사연은 이렇다.

길고양이 친 운전자 411만원 들여 치료…보험사에 비용청구했으나 거절 #1심·2심 법원 “길고양이는 주인없는 물건이어서 보험금 청구할 수 없어” #운전자 “지자체가 길고양이 보호 의무자…대법원까지 갈 것” #동물단체 “길고양이 소유자 명확히 하고 헌법에 동물 생명권 명시해야‘”

지난해 5월 31일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한 도로에서 출근길에 차를 빼던 A씨(43)는 고양이를 차로 치게 되자 곧바로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했다. 척추가 부러진 고양이는 수술을 받았다. 치료비로 411만원이 나왔다. 렌터카를 몰고 있던 A씨는 렌터카의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 약관상 ‘다른 사람의 재물’을 치었을 경우 보험사가 배상해줘야 하는 조항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길고양이는 '소유권자가 없는 재물'이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A씨는 곧바로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길고양이를 ‘주인 없는 물건’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달 15일 열린 2심에서도 법원의 판단은 똑같았다. A씨는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A씨는 동물보호법상 소유자는 해당 동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을 뜻하고, 지자체에 길고양이 보호 의무가 있는 만큼 지자체가 길고양이의 ‘사실상 소유자’라는 주장이다. 동물보호법 14조는 '지자체는 소유자를 알 수 없는 동물을 발견했을 때 동물을 구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는 난감해한다. 길고양이를 구조는 하지만 소유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선자 부산시 동물보호팀장은 “동물을 구조하는 것과 소유는 별개의 문제”라며 “동물보호법상 명시돼 있는 지자체의 의무는 ‘길고양이의 경우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사한 사건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2016년 10월 11일 부산 부산진구 산복도로 부근에서 유기견이 시내버스에 치여 장이 파열됐다. 신고받고 출동한 119구조대는 유기견을 동물병원으로 이송했고, 장 파열 수술비로 300만원이 나왔다. 사고 발생 다음 날 동물자유연대는 버스 회사를 상대로 치료비를 청구했지만, 버스 회사는 이를 거절했다. 주인이 없는 유기견은 무소유물이기 때문에 치료비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심인섭동물자유연대 부산지부 팀장은 “대한민국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는 ‘재물’이기 때문에 재물이 손상됐을 때 소유주에게 보상책임이 있다”며 “유기견이나 길고양이처럼 소유주가 없는 동물은 보상을 받을 소유주가 없기 때문에 보상금이나 구상권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유기견의 치료비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한 독지가가 냈다고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동물보호소에서 유기견들이 철창 안에 있다. 철창에는 한 마리 개를 넣어야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유기견이 많고 철창이 모자라 두 마리 개를 함께 수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 동물보호소에서 유기견들이 철창 안에 있다. 철창에는 한 마리 개를 넣어야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유기견이 많고 철창이 모자라 두 마리 개를 함께 수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동안 유기된 동물은 8만9732마리에 달한다. 2015년과 비교해 약 10%(7650마리) 늘었다. 이 수치는 시·도 관할보호소에 들어온 유기동물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로 20만~30만 마리에 달할 것으로 동물보호단체에서는 추정한다. 유기동물이 늘면서 이번 길고양이 소송과 같은 유사한 분쟁이 잇따라 이어질 전망이다.

정해영 변호사는 “현행법상 과실로 고양이나 개를 치었을 때 주인을 알 수 없으면 치료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며 “하지만 다친 동물을 두고 바로 가는 게 사회상규상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소유주 문제 등 현행 야생동물 보호에 관한 법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단체에서는 ‘길고양이 손해배상 소송’을 계기로 다친 동물에 대한 구조의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애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유기동물을 과실로 다치게 했을 경우 구조의 의무를 법에 명확히 하고, 동물을 재산이 아닌 생명으로 보도록 헌법에 동물권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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