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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을 헤집듯, 내려찍듯 !…백건우, 파리오케스트라와 협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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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건반위의 구도자' 백건우씨(59)가 22일 파리 모가도르 극장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프랑스 최정상급 파리 오케스트라(지휘자 : 파보 예르비)와 호흡을 맞춘 협연이었다. 19세기 말에 창단된 파리 오케스트라는 문쉬.카라얀.솔티.바렌보임 등이 지휘봉을 이어받으며 프랑스 정상급으로 키운 관현악단이다.

이날 백씨가 연주한 곡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1881~1945)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백씨는 "어려운 곡이지만 동시에 20세기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곡 중 하나"라고 선곡 배경을 설명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바르톡은 헝가리에서 리스트에 버금가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헝가리 민속음악에서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찾은 작곡가다. 이를 위해 헝가리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민속 노래를 수집했다. 이날 백씨가 연주한 음악도 클래식의 뼈대에 동요풍의 헝가리 민속음악 색채가 가미된 것이었다.

백씨는 이날 파워로 청중을 압도했다. 내려찍는 듯한 그의 손가락 터치에 끝모를 심연에서 피어오르는 듯한 소리가 만들어졌다. 그 깊이에 빠른 속도가 더해졌다. 25분간의 연주를 '정상 속도'로 풀어본다면 족히 두시간 분량은 될 듯 싶었다. 청중들에게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백씨의 연주에 독일제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도 버거워하는 듯했다.

열정적인 연주가 끝나자 모가도르 극장을 가득 메운 1500여 명의 청중들은 '앙코르'를 연발하며 5분 동안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백씨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야 했다. 앙코르 곡은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無言歌). 건반을 마구 헝클어 뜨리며 피아노를 부숴버릴 듯 연주했던 바르톡의 곡과는 달리 너무나 잔잔한 음악이었다. 넓고 넓은 자기 음악의 폭을 '무언'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이날 백씨의 연주를 감상한 음악학자 레미 스트리쾨르는 "너무나도 어려운 음악을 훌륭히 소화해 냈다"며 "백건우씨는 항상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위대한 음악가"라고 평가했다.

백씨는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곡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것에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연주실황은 프랑스의 클래식음악 방송인 프랑스 뮤직에서 녹화로 방송될 계획이다.

한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녹음에 도전 중인 백건우씨는 1차분 16~26번 소나타를 지난해 가을 출반한 데 이어 올 가을 2차분으로 1-15번 소나타를 내놓을 예정이다. 6월 녹음을 앞두고 백씨는 요즘 베토벤에 빠져 있다. 나머지 3차분은 내년 말 나올 예정이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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