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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아 “담배꽁초 모으기보다 우량기업에 투자” 원주영 “싼값에 사서 제값 될 때까지 기다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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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18면

중소형주 펀드 이끄는 여걸들

24.5% vs 9.8%. 10월 말 기준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올해 상승률이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황 호조로 수차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대형주 쏠림현상으로 소외됐던 코스닥 시장은 부진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중소형주가 기지개를 펴고 있다. 코스닥 지수 역시 700선을 넘어서더니 지난 16일엔 780선을 돌파했다. 2015년 7월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코스닥 시장이 들썩이자 중소형주 펀드에 투자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6일 기준 중소형주 펀드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5.9%로 일반 주식형 펀드(2.9%)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최근 중소형주 펀드 시장에선 두 명의 여성 펀드매니저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국내 대표 중소형주 펀드로 손꼽는 ‘삼성중소형포커스펀드’를 운용하는 민수아(46)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밸류본부장과 펀드 출시 넉 달 만에 2806억원 자금이 몰린 ‘신영마라톤중소형주펀드’의 핵심 운용역인 원주영(43) 신영자산운용 마라톤가치본부장이다. 이화여대 법학과 선후배 사이기도 한 두 사람에게 중소형주 펀드 전망과 유망 업종에 대해 들어 봤다.



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밸류본부장과 원주영 신영자산운용 마라톤가치본부장은 “코스닥을 비롯해 중소형주 시장은 2년 가까이 조정을 겪었기 때문에 사고 싶은 기업이 여전히 많다”고 입을 모았다. 민 본부장은 국내 운용업계에서 주목하는 1세대 여성 펀드매니저다. 1996년 LG화재(현 KB손해보험) 투자팀과 2002년 인피티니 투자자문 주식운용팀을 거쳐 2006년 삼성액티브자산운용으로 스카우트됐다. 이듬해 첫선을 보인 ‘삼성중소형포커스펀드’를 민 본부장이 운용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주로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소형 주식에 투자하는 이 펀드는 10년 누적 수익률이 176%를 넘어섰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지난해 중소형주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할 때 삼성중소형포커스펀드도 10% 이상 손실을 냈다. 하지만 매매회전율은 40~50%로 업계 최저 수준을 유지했다. 민 본부장은 시장 흐름보다 기업가치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펀드에 담은 100여 개 기업을 분석해 보니 매년 영업이익이 꾸준하게 늘 것으로 기대돼 기존 전략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민 본부장의 예상이 맞았다. 이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21%(16일 기준)로 지난해의 손실을 완전히 만회했다. 같은 기간 45개 국내 중소형주펀드 평균 수익률(13.9%)보다 7%포인트 더 높다.

최근 펀드 시장에선 신영자산운용의 ‘신영마라톤중소형주펀드’를 주목한다. 국내 1세대 가치투자가로 손꼽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이사가 취임한 후 선보인 첫 펀드인데다 출시한 지 넉 달 만에 2806억원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 펀드의 핵심 운용역이 원 본부장이다. 그는 99년 신영자산운용에 입사한 뒤 허 대표 밑에서 가치투자 기법을 전수받았다. 특히 2001년 이후 17년째 국내 한 대형 연기금의 중소형주 펀드를 운용한 전문가다. 원 본부장은 “중소형주는 대형주에 비해 주가 변동성이 커 몇 년을 고심하다 올해 처음으로 일반 투자자를 위한 공모펀드를 내놨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대형주 쏠림현상이 심해지면서 저평가된 중소형주가 눈에 띄게 는 데다 새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어 투자 적기로 판단했다. 단 설정액 3000억원을 목표로 해 증시 큰손인 기관투자가의 자금은 받지 않는다. 중소형주의 특성상 대규모 자금이 몰리거나 환매하면 일반 투자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원 본부장은 “예상보다 목표 설정액을 빠르게 채워 이달 24일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달 수익률은 4.3%다.

운용 전략: 저평가 vs 경쟁력

둘 다 중소형주 펀드를 운용하지만 운용 전략에 차이가 있다. 가치투자가인 원 본부장은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선호한다. 반면 민 본부장은 경쟁력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을 중심으로 가격을 살핀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우선 순위가 다르다. 원 본부장은 2000년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기업 탐방을 다닌다. 대다수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커버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분석 보고서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다리품을 팔며 저평가된 우량 기업을 찾아다닌다. 또 싼값에 사서 제값에 팔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이다. 한 번 투자하면 3년은 기본이고 10년 이상 보유하는 기업도 많다. 그만큼 장기간 투자하기 때문에 재무적인 안정성을 중요하게 따진다. 이런 방식으로 발굴·투자한 곳이 발전기·가스터빈 등을 점검하는 발전소 정비업체 금화피에스시다. 기업 대상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일반 투자자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2350억원으로 원 본부장이 처음 투자했던 2010년(977억원)보다 140% 늘었다. 같은 기간 주가도 4배 가까이 올라 현재 4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민 본부장은 주가보다 기업 경쟁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의 운용철학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 기업을 대체할 회사가 있는지, 중소형주에서 대형주로 성장할 비즈니스를 갖추고 있는지 등 경쟁력을 따져 투자한다. ‘단순히 싼 주식을 사들이는 담배꽁초식 투자는 안 된다’는 버크셔해서웨이 2인자인 찰리 멍거 부회장의 조언도 맞다고 본다. 한 두 모금(단기 이익) 정도 피울 수 있는 담배 꽁초보다 적정주가를 지불하고 우량기업에 투자하는 게 장기간 이익을 거두는 데 효율적일 수 있다.”

그가 장기간 보유한 대표적인 종목이 로엔이다. 펀드 특성상 투자 종목은 두 달 전 기준으로 공개된다. 로엔 투자비중은 3.55%로 삼성중소형포커스펀드의 보유주식 톱10(표 참조)에 포함된다. 민 본부장은 “특히 로엔처럼 업황이 어려울 때 온라인 음원 서비스, 연예인 기획사 등 적극적인 신사업 투자로 시장 점유율을 늘린 기업을 유망하게 본다”고 말했다. 2013년 2만원대에 담았던 로엔은 현재 11만원까지 올랐다.

유망 산업: 바이오·IT vs 내수

유망산업(업종)을 보는 시각도 확연하게 나뉘었다. 민 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기업에 주목한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기술이 발전하거나 다른 업종과 융합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기계·화학·제약업종을 꼽았다. “일본에선 이미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지난해 일본 편의점업체 로손과 일본 가전기업 파나소닉이 손잡고 무인 편의점 시스템을 선보였다. 점원 없이 바코드가 부착된 장바구니로 계산하고 정산한다. IT 발전이 유통 산업 틀을 바꾸고 있다. 실제로 최근 A제약업체를 투자한 것도 신약 개발보다 약을 포장하는 조제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보유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2015년까지 펀드에 담지 않았던 바이오주 투자 비중이 늘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민 본부장은 “당시엔 바이오주 주가가 아무리 치솟아도 오르는 이유를 알지 못해 투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바이오 담당 애널리스트를 뽑아 전문적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기업을 중심으로 펀드에 담기 시작했다. 민 본부장은 “바이오주는 올해부터 거품이 빠지고 본격적인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원 본부장은 거품 우려가 있는 바이오·IT기업보다 그동안 소외받은 유통업 등 내수주를 유망하게 봤다. “바이오 주식은 변동성이 커 회사 내 모든 펀드에 담지 않고 있다. IT 주식도 고평가 부담이 크다. 이보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여파로 부진했던 내수주가 유망하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유연근무제 등 정부가 다양한 내수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있어 실적이나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해야 한다.”

원 본부장은 지난 15일부터 2박 3일간 부산의 조선관련 6곳을 둘러보고 왔다. 최근 중국 조선소들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한국 조선업계가 실질적인 혜택을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수주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기자재 업체도 서서히 이익이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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