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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83년생이 99년생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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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의 여파는 전국으로 가서 닿았다. 서울에 사는, 아마도 남들보다 감각이 섬세할 몇몇 주변인은 진동이나 건물의 흔들림을 느꼈다고도 했다. 한동안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도 그 증언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그 재난은 누군가의 인생에 5.4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가서 닿았다. 바로 전국의 99년생들이다.

원래 대학수학능력시험, 그러니까 수능을 보는 날은 대한민국의 시곗바늘이 잠시 멈추는 날이다. 금융시장의 개장이 늦춰지거나 비행기의 이착륙도 금지되고, 구급차와 순찰차가 학생 이송에 동원되는 것 역시 미담이 된다. 사회 전체가 수능을 보는 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능 연기는 지진이라는 생소한 재난만큼이나 놀랍다. 우리는 지금 어느 성역의 첫 균열을 목도하고 있다.

변방에서 11/18

변방에서 11/18

수능을 준비해 온 99년생들은 지진 피해의 당사자가 됐다. ‘99년생 수난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신종플루·세월호·메르스 등 여러 사건·사고가 그들의 학창시절에 일어났고 수능 연기가 거기에 마지막 점을 찍은 셈이다. 83년생인 나는 ‘이해찬 세대’라고도 불린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보며 자랐고 교육부 장관 이해찬씨의 주도로 갑자기 생긴 수시모집이라는 제도는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99년생과 83년생이 아니더라도 모든 세대가 저마다 수난의 서사를 촘촘히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99년생들에게 괜찮다거나, 나도 그랬다거나,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열없는 말을 건네고 싶지는 않다.

99년생은 수능의 균열을 몸으로 겪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세대가 됐다. 몹시 억울할 것이고 누군가가 원망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대한민국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야 될 때가 온다. 어쩌면 5.4의 규모나 지나온 세월의 무엇보다 더욱 강력할 수 있을 국가의 재난 앞에서 그들은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강요할 수 없고 함부로 기대를 내비칠 수 없다. 그때 그들이 몸에 각인시킨 여러 수난의 서사로 인해 지금의 삶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영향받았는가를 기억하고, 자신들이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해 주길 바랄 뿐이다. 나는 조금 앞선 세대로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우선은 며칠 남은 수능에서 모두의 건투를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