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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오프’, 그 정신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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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

‘모세의 기적’으로 검색되는 정보는 119구급차에서 찍은 블랙박스 영상이 대부분이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비킨다. ‘내 가족이 저런 상황에 처했다면…’ 하는 연상 작용으로 고마움과 뭉클함이 느껴진다. 누구라도 그 행렬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기적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일이다. 운전할 때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나도 더 예민해졌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119 소방차에 동승한 카메라가 사이렌 소리에 꿈쩍하지 않는 차량을 고발한 방송뉴스가 때만 되면 나왔다. 혀를 차며 뉴스를 봤던 시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꺼져 가는 생명을 살리는 기적, 우리의 마음이자 사회의 공공선(公共善)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13일 총상을 입고 판문점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 사건을 보며 기적이 아직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병사는 수원시에 있는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귀순 한 시간도 안 된 북한군은 민간인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매년 1만여 명이 다치고, 100여 명(자살 포함)이 숨지는 우리 군에 총 맞은 군인을 치료할 중증외상센터가 없었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다친 석해균 선장을 살린 최고의 권위자 이국종(48) 교수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있다는 군의 설명은 한심했다. 북과 대치한 판문점과 전방 부대에는 ‘이국종 시스템’이 없었다.

그런 이 교수의 고민은 더 깊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하드웨어보다 더 급한 응급후송의 문제를 얘기했다(실제 이 교수도 수시로 헬기를 타고 응급출동을 한다). 시속 300㎞ 이상의 속도를 내는 헬기(블랙호크)로 북한 병사를 실어 나르며 가슴의 공기를 빼내는 응급처치가 가능했던 미군 항공의무후송팀 ‘더스트오프(DUSTOFF)’를 부러워했다. 우리 군에 없는 그 팀이 북한 병사를 살렸다고 했다.

1962년 베트남전에서 다친 미군을 구조하는 헬기가 이착륙하면서 ‘먼지(Dust)를 일으키는(Off)’ 모습이 팀의 이름이 됐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단 한 명이라도 살리고 말겠다는 더스트오프의 정신은 팀의 모토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전장의 아군을 향한 주저하지 않는 헌신적 봉사(DUSTOFF·Dedicated Unhesitating Service To Our Fighting Forces).” 그 오롯한 정신을 미국은 선진국다운 시스템으로 만들어냈다.

우리 군도 그런 팀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군 골프장은 미군보다 좋을 거야”라는 네티즌의 의미심장한 댓글을 가벼이 넘기지 않길 바란다. 모세의 기적을 바랐던 도로 위 시민들도 한마음일 것이다.

김승현 사회2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