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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마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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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경제부 차장

박현영 경제부 차장

2010년 중국 항저우의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했을 때 마윈(53) 회장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알리바바가 세계적인 기업인과 명사를 초청해 개최하는 ‘알리페스트’ 포럼에서였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존 도너휴 e베이 사장 등이 연사로 초대됐다.

무대에 오른 마 회장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강연했다. 기억에 남는 대목은 “내가 e베이를 중국에서 쫓아내겠다고 했었는데, 해냈다”고 거듭 강조한 부분이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e베이는 2004년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알리바바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2년 뒤 철수했다. e베이 사장을 손님으로 초대해 놓고는 참으로 호기롭다고 생각했다. e베이와 싸울 당시 마 회장은 직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e베이가 바닷속 상어라면 나는 양쯔강 악어다. 바다에서 싸우면 우리가 지지만, 강에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

지난 11일 알리바바의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 쇼핑 행사를 보면서 마 회장, 그리고 알리바바가 더욱 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올해 판매액은 지난해보다 39% 늘면서 사상 최고액(약 28조원)을 또 경신했다. 225개국에서 접속해 물건을 사 갔다. 동네 가게 60만 곳을 참여시켜 오프라인 유통까지 끌어안았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갈라쇼에 니콜 키드먼, 루이스 피구, 마리야 샤라포바, 랑랑 등 글로벌 스타들이 참석했다. 기술력은 더 세졌다. 주문이 몰리는 피크 시간대에 1초당 25만6000건의 주문을 처리해 지난해보다 용량이 113% 늘었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나아갈 채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성공 뒤에는 거대한 중국 시장과 모바일 열풍이 있다. 하지만 마윈이라는 기업가를 만든 건 특유의 전투력, 헝그리 정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때부터 9년간 매일 자전거를 타고 40분 거리에 있는 항저우 시내 호텔로 갔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료 가이드를 해주면서 영어를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익힌 영어는 훗날 미국을 방문해 인터넷을 접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덕분에 사범대 출신의 ‘컴맹’이 1999년 인터넷 기업을 창업했다.

그는 무협소설 열혈팬이다. 최근 무술영화 공수도(功手道)에 무림 고수 풍청양(風淸揚)으로 출연했다. 진융(金庸) 소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풍청양은 주인공에게 천하제일 무공인 독고구검(獨孤九劍)을 전수하는 인물이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별칭이기도 하다. 자신감과 투지가 느껴진다. 이런 야성의 기업가 정신을 국내에서도 자주 접했으면 좋겠다.

박현영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