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무』사랑풍속도에 치중 원작의도 반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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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KBS·MBC 양TV는 지난 주말 작가 서정인씨의 원작소설 3편을 공교롭게도 한꺼번에 방영, 화제가 됐다.
TV드라머로 극화된 작품들은『원무』(K-1TV 드라머 초대석)와『사촌들』(M-TV 베스트셀러 극장), 그리고 지난해 5월 방영한 것을 9일 재방영한『강』등, 한 작가의 원작소설3편이 한꺼번에 전파를 탄 것은 우리TV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작가 서정인 씨는 62년 사상계신인문학상에『후송』이 당선된 후 창작활동을 계속,『강』『가위』『철쭉제』『달궁』등의 작품집을 냈으며 현재 전북대 영문과교수로 있는 문단의 중견작가.
삭막한 삶의 우수 어린 한 단면을 간결한 문체로 함축하고있는 그의 소설들은 TV드라머로 재현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서정인 소설의 특성을 감안하고 본 K-lTV의『원무』와 M-TV의『사촌들』은 우선 작가의 의도를 얼마나 영상화했는가를 기준으로 할 때 뚜렷한 차이를 드러냈다.
69년에 발표된 소설『원무』는 6명의 젊은이들이 벌이는 2중 3중의 만남을 순환구조로 엮어내 결국 아무도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하는 사랑의 실종을 그린 작품. 드라머『원무』도 기본구조에서는 원작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원작은 탈영병을 통해 당시의 허무주의와 군에 대한 야유를, 자존심 센 법대생이 속물주의자가 되는 과정을 통해 60년대의 세속적 출세주의를 비판하고있으나 드라머는 이러한 현실비판 의식보다 사람의 풍속도에 치중, 원작의 의도를 반감하고 만 듯한 느낌이다.
즉 원작자의 이름과 기본 뼈대만 빈데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을 남긴 것이다. 탈영병이나 사단장부인의 곗돈 심부름이나 하는 범사의 얘기가 TV드라머에는 아직도 들어갈 영역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해도 씁쓸함은 계속 남는다.
한편 M-TV가 10일 내보낸『사촌들』은 각기 다른 계층을 대변하는, 그러나 혈연적으로 사촌간인 인물 등을 통해 가치관의 혼란과 건강한 삶에 대한 기대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원작과 거의 근사치를 이루었다. 특히 원작의 강점인 전라도 말의 표현적 발랄함을 살린 대화문장 등을 에피소드의 연결로 잘 살린 것이 눈길을 끌었다. 줄거리가 거의 없는 지루한 원작을 재미있는 영상으로 옮긴 연출력 있는 드라머였다.
다만 주인공을 풍자의 기능을 맡은 광대처럼 드러낸 인물의 성격묘사가 좀 과장 스러웠다는 점과, 서울에 있는 주인공의 사촌형이 노조를 설립한 여공들에게 깡패를 동원, 똥물을 끼얹은 사건과 관련돼 있다는 원작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후반부의 줄거리이해가 다소 모호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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