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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거국 색채띠려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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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태우정권의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게 될 민주화합추진위(민화위) 가 11일 위원 55명의인선을 끝냄으로써 발족했다.
민화위는 앞으로 권위주의 청산에 의한 민주주의 정착, 선거과정에서 첨예하게 드러난 지역간·세대간·계층간 갈등·분열상을 국민화합으로 치유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노당선자가 취임하면 여기서 마련된 각종 방안들을 기조로 국정을 펼쳐나갈 계획으로 있어 민화위의 활동에 큰 관심이 쏠려 있다.
활동시한은 새 대통령 취임전까지로 돼 있으나 작업의 진척도에 따라 다소 늦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기성풍토에 책임 크다">
민화위에 모인 55명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각계의 원로·중진들이다.
구여권인사나 정부쪽에 협조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인사들도 일부 포함돼 있지만 대체로 5공화국에 너무 깊게 개입하지 않았거나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들을 많이 참여시켜 전반적으로 중도적·거국적 색채를 띠게 하려고 신경을 쓴 인상이다.
준비위의 한 관계자는 『선거에서 나타난 64%의 반대의견을 수렴, 국정에 반영한다는 것이 취지였던 만큼 친정부인사는 처음부터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재야운동권도 많이 참여시켜야한다는 여론이 높았으나 교섭과정에 어려움도 있고 자칫 본래의 취지에 어긋날 수도 있어 극단론자는 제외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준비위는 당초 60여명을 목표로 1차 인선을 한 뒤 준비위원 13명이 4∼5명씩 분담해 영입에 나섰으나 취지에 대한 이해부족등으로 교섭에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첫 면담에 선뜻 응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며 3∼4차례 간곡히 설명하고 그래도 모자라 각종 연줄을 동원해 설득작업을 펴기도 했는데 이때문에 당초 지난 연말에 발족하려던 것이 10여일 이상 지연됐다.
김준엽전국대총장, 홍남순변호사를 비롯해 K전총장, 언론인C·P씨, 작가K씨, 대학교수P·L씨등 4명, 그리고 몇몇 재야인사들은 끝내 고사, 준비위측은 못내 섭섭함을 표시하고있다.
김전국대총장의 경우 조일문준비위원장이 두차례 만났고 지난6일엔 노당선자까지 직접 나서 간곡히 참여를 부탁했으나 『한번도 대외활동에 나선 일이 없다』며 끝내 사양했다는 것이다.
가나안농군학교의 김용기목사도 물망에 올라 한 준비위원이 찾아가 「큰절」까지 하며 참여를 호소했으나 「무위」였고, 언론인 C씨도 노당선자가 직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영입에는 실패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일이나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발전·국민화합차원에서 의견제시를 해달라는 것인데 그마저 사양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자세』라고 비판하면서도 『그동안 참여인사들이 결국 개인 이미지를 유지하지 못하게 만든 기성풍토에 책임이 크다』며 이해.
참여를 기피한 인사들 중엔 『노당선자의 뜻을 십분 이해하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 참여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실여건을 이유로 내세운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대학교수들은 『학생들 중 과격운동권이 대학마다 2백여명씩 있어 참여했다간 배겨나기 힘들 것』이라고 현실적 고민을 호소했다고 교섭자들이 설명했다.
일부 교수들은 『노당선자가 아직은 민정당총재여서 민화위가 민정당 당내기구와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취임 후 참여를 약속하기도 하더라는 것.
준비위측은 결국 이같은 현직교수들의 고민을 이해하고 「현역」은 모두 제외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가톨릭농민회 인사를 비롯, 몇몇 재야인사를 접촉했으나 『순수한 취지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아 섭섭했다』고 준비위측은 토로.

<광주인사 영입에 어려움>
광주쪽 인사 영입도 어려움이 컸는데 특히 선거 후 광주지방의 분위기가 워낙 차가와 말 꺼내기조차 힘들었다는 것.
이 지역 출신인 이영일·고귀남의원이 접촉에 나섰으나 홍남순변호사등은 『취지가 좋은지는 모르나 내 한몸이 아니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다행히 5·18유족회 박찬봉회장과 5·18부상자회 박옥재회장등이 『우리의 참뜻과 진정한 해결방식을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펴겠다』고 나섬으로써 참여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3개분과위중 지역감정 해소반에 들어가 광주사태해결방식을 논의한다.
구정치인 중에선 공화당의 박준규전당의장·김재정전총무·신형식전사무총장과 신민당의 고흥문·이충환전최고위원등이 교섭대상자였으나 이중 고씨는 오는 총선에 야당으로 출마할 결심이라며 사양했다는 후문.
민정당인사들이 이들을 접촉하자 정가에선 새정부의 총리 또는 부활된 민정당대표위원등에 이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다.
종교계에선 각 교파마다 1명씩의 대표를 참여시키기로 하고 교섭에 나섰는데 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 김경수성균관장, 고정훈 천도교 교령등은 비교적 교섭에 수월했으나 천주교 및 개신교측과의 교섭이 어려웠다고 한다.
김수환추기경이 포함될 것이란 소문이 있었으나 준비위측은 당초부터 명동성당의 김옥균서울교구 주교를 의중에 두어 영입에 성공했고 전기독파방송사장 김관석목사는 끝내 안된 케이스.

<야 3당의원 참여 요청>
준비위는 여야의원도 같은 비율로 참여시키기로 하고 우선 민정당에서는 최영철·유흥수·배성동의원을 내정해두고 있으며, 야당측엔 민주·평민·공화당에 각각 의원 1명씩을 선발해 보내달라고 9일 협조공문을 발송했다.
준비위는 또 민화위가 당내기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집안식구」지만 민정당에도 똑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남재희·김학준의원 나서>
혁신계원로 이동화옹의 영입에는 『이동화평전』을 쓴 김학준의원과 평소 이옹과 가까운 남재희의원이 나서 성사.
신두영전감사원장에게는 신원장시절 대변인이었던 염길정의원이 그의 공주농장을 몇 번 찾아갔다는 것. 지난번 선거에서 김대중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강훈옹에 대해서는 그런 친야적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 집요하게 교섭.
단일직종으로는 변호사가 5명으로 가장 많은데 민화위가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한 일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
군출신으로는 5·16직후 국방장관을 잠시 지낸 뒤 오랫동안 초야에 묻혀왔고 「강직」한 이미지에 신망을 받고 있는 박병권씨를 심명보비서실장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

<보고서 작성 국민에 발표>
민화위는 필요할 경우 증인도 출석시킬 예정이며 주로 토론에 의한 보고서를 작성해 국민에게 발표하고 그 보고서를 노당선자에게 전달, 새 정부에서 반영토록 할 계획인데 관계자는 『굴절없는 의견 수용이 주목적』이라고 했다.
민화위는 곧 서울 종로4가 구전매청자리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활동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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