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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탈석유 정책은 머나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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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에너지 정책 홍보차 전국 순회에 들어간 조지W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밀워키의 한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센터를 둘러보기 위해 보안경을 쓰고 있다. [밀워키 AFP=연합뉴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제시한 '탈(脫) 석유' 정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일 미국 순회에 들어갔다.

부시 대통령은 순회에 앞서 "미국은 정치가 불안정한 국가나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들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며 "우리는 결코 이들 산유국의 볼모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부시는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센터와 미시간주 오번힐스의 태양열 개발업체를 찾았다. 이어 21일에는 콜로라도주 골든의 재생에너지 연구소를 찾아 바이오 연료 개발 현황을 둘러볼 예정이다.

◆ 배경=텍사스 석유업자 출신인 부시 대통령이 '탈 석유'와 대체에너지 개발을 외치게 된 배경은 갤런(약 3.79ℓ)당 3달러(약 3000원)까지 치솟은 고유가 때문이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알래스카 등지에 유전 개발을 추진하고 고연비 차량의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으로 유가 상승에 대처하려 했다. 그러나 효과가 신통치 않아 유권자의 불만이 높아지자 1월 31일 국정연설에서 ▶2025년까지 중동산 석유 수입을 75% 이상 줄이고 ▶대체에너지 연구 예산을 2007년까지 22% 늘린다는 새로운 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여행은 그 의지의 표현이며 11월 중간선거에 대비한 포석 중 하나다.

◆ 효과는 미지수=전문가들은 "말만 앞선 정책"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시가 석유를 대체할 미래 에너지로 꼽은 에탄올과 태양열.풍력에너지.청정석탄과 에너지 소비를 줄여줄 하이브리드 차량 등을 상용화하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 분야에 책정한 지원비는 고작 1억5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전미환경기금의 필립 클랩 회장은 "부시의 정책이 전혀 바뀐 게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5년이란 시한 설정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부시가 개발을 독려하는 수소 자동차는 안전성과 충전소 확보에 시간이 걸려 2025년 시장점유율이 7%에 그칠 것이란 게 미자동차협회(AAA)의 전망이다.

또 부시가 2012년까지 실용화를 다짐한 에탄올 연료도 2025년 생산량이 하루 78만 배럴에 그쳐 미국 내에서 하루 2060만 배럴이 소비되는 석유를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미 에너지부 관계자는 지적했다.

◆ 외교적 부작용 우려도=부시가 추진하는 탈 석유 정책의 표적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현재 미국 수입 원유의 25%를 공급한다. 그중 사우디아라비아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중동산 석유 수입을 줄인다는 부시의 구상이 실현되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맹방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메이저 석유업체 셰브론의 피터 로버트슨 부회장도 "미국이 중동산 석유 수입량을 줄일 경우 다른 산유국들이 석유값을 올려 결국 유가는 제자리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휘발유세를 높여 석유 소비를 줄이는 게 우선"이라며 "대통령과 주요 각료가 석유업계 출신인 현 행정부가 휘발유세를 올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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