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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영어]트럼프 연설 속기록 보니…곳곳서 보이는 부정확한 번역들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번역, 게재한 국회 속기록의 일부 표현이 실제 발언 내용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영어신문인 코리아중앙데일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에 대한 국회 속기록을 분서한 결과 10여 곳에서 실제 연설 내용과 다르거나 어색한 표현이 발견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우선 세 척의 항공모함 배치에 대한 번역에 오류가 있었다.
속기록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현재 한반도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것들이 3대의 큰 항공모함입니다. 이 항공모함에는 F-35가 장착되어 있으며 15대의 전투기가 들어가 있습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론 몇 대의 전투기가 배치돼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기종을 더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원문엔 “Currently stationed in the vicinity of this peninsula are the three largest aircraft carriers in the world loaded to the maximum with magnificent F-35 and F-18 fighter jets”로 돼 있다. 이를 번역하면 “현재 한반도 주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 세 척이 F-35 및 F-18 전투기를 탑재한 상태로 배치되어 있습니다”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공개한 트럼프 연설 번역본에도 15대 전투기 내용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구절이 빠진 곳도 보였다.

8일 밤 국회가 배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 속기록

8일 밤 국회가 배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 속기록

속기록의 “한국에서는 그 어떤 독재자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한국 국민들이 해냈습니다. 바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미래 주도권을 가졌습니다”란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론 “미국의 도움과 함께(with the help of the United States)”란 말을 더 했다.

그래서 원문은 다음과 같다. “In this Republic, the people have done what no dictator ever could -- you took, with the help of the United States, responsibility for yourselves and ownership of your future.”

북한을 지칭하면서 쓴 ‘prison state’를 ‘감옥 국가’ 또는 ‘교도소 국가’라고 번역하지 않고 ‘교도국가’로 기록한 것도 논란이다. 주한 미 대사관도 ‘교도국가’라고 했다. 하지만 교도가 ‘가르쳐서 올바른 길로 이끈다’는 의미임을 감안하면, 부정확한 번역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맥락을 제대로 전달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All the while, the regime has pursued nuclear weapons with the deluded hope that it could blackmail its way to the ultimate objective. And that objective we are not going to let it have. We are not going to let it have. All of Korea is under that spell, divided in half.”

국회 속기록엔 “이 와중에 북한 체제는 핵무기를 추구했습니다. 잘못된 희망을 갖고 협박으로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한국을 그 밑에 두는 것이지요”라고 게재돼 있다.

미 대사관 번역본은 속기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명료하다. “또한 협박으로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을 갖고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추구했습니다. 우리는 그 같은 목표를 이루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분단된 채 한국 전체가 이에 매여 있습니다.”

주한 미국 대사관에 게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번역본.

주한 미국 대사관에 게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 번역본.

북한으로부터 비핵화 동의를 이끌어낸 2005년 6자 회담 결과를 언급한 부분도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속기록에는 “2005년에는, 수년간 외교 활동이 있었는데 그때 이 독재체제는 궁극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단념하고 비확산 조약에 복귀하겠다고 했습니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정확한 번역은 “수년간의 외교적 대화 끝에 2005년 (북한) 독재정권은 궁극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비확산 조약에 복귀하기로 합의했습니다”(In 2005, after years of diplomacy, the dictatorship agreed to ultimately abandon its nuclear programs and return to the Treaty on Non-Proliferation)이다.

또 “In 2009, the United States gave negotiations yet another chance, and offered North Korea the open hand of engagement’를 속기록에서는 ‘2009년에 미국은 다시 한 번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관여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를 지시했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2009년에 미국은 다시 한 번 북한과의 대화를 결정했고 북한에게 대화의 손을 내밀었습니다(offered North Korea the open hand of engagement)”로 번역하는 게 자연스럽다.

시제 잘못도 있다.
트럼프가 ‘We are defeating ISIS’라고 한 구절은 속기록엔 ‘우리는 IS를 물리쳤고’로 돼 있는데, 미 대사관은 ‘우리는 ISIS를 물리치고 있고’로 썼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회 속기록에 여러 오역과 비문이 있는 것은 현장에서 이루어진 동시통역을 바탕으로 작성됐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 통역사는 “생방송이란 점과 미국 대통령 연설이란 점, 그에 따른 부담감을 생각하면 이 정도 동시통역은 잘한 것”이라며 “주요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잘 전달됐지만 무기 배치와 같은 민감한 사안과 용어에 대한 부분은 아쉽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편 트럼프 대통령 방한 첫 날 이뤄졌던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동시통역의 경우 미국 기자의 질문이 제대로 통역되지 않아 문 대통령이 재차 질문의 요지를 묻는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국 CBS의 마가렛 브래넌 기자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의 첨단 미국 무기 구입 결정을 언급하며 ‘이런 군사적 증강이 (military build-up) 북한과의 대화를 주장하던 기존 입장에서 좀 더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인식의 변화 (a change in your view)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And I'm wondering, as you look towards that military build-up, if that signals something -- perhaps a change in your view -- where you believe a more aggressive stance towards North Korea is more appropriate).

해당 질문은 “군사력 증강이 뭔가 시그널을 보냄으로써, 북한에 대한 좀 더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로 전달됐다.

이에 문 대통령이 질문이 ‘군사 자산 획득’을 의미하는지 ‘군사적 긴장’을 의미한 것인지 재차 물었다.

이에 브래넌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 무기를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군사무기 구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북한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까”라고 설명했다. (President Trump said you would be making military purchases, military equipment. What does that signal? And is that a change?)

이 질문은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군사적 획득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라고 통역됐다.

익명을 요구한 통역 전문가는 해당 통역에 대해 “질문 전달 방향과 맥락이 틀어져 매우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kang.ji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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