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후분양제, 투기 억제 묘수지만 집값 상승 걱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미리 분양할 것인가(선분양제), 짓고 나서 분양할 것인가(후분양제).

부동산 시장 흔들 ‘뜨거운 감자’ #선분양제, 40년간 관행으로 정착 #최근 투기·가계부채 원인으로 지목 #건설사, 공사비·이자비용 만만찮아 #후분양제 도입 땐 분양가 더 올라 #정부, 공공부문에 단계적 시행 계획 #“주택공급 축소 등 부작용 보완 필요”

후분양제가 부동산시장 핫 이슈로 떠올랐다. 새 정부가 후분양제 도입을 검토 중인 가운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후분양제 흔들기’에 나섰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다. 후분양제는 아파트 건설 공정을 전체의 80% 이상 진행한 뒤 입주자를 모집하는 제도다. 국내에선 대지 소유권 확보, 분양 보증 등 일정 조건만 충족하면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하는 선분양제가 일반적이다.

발단은 HUG가 지난 8월 발간한 ‘주거복지 향상을 위한 주택금융시스템 발전 방안’ 보고서다. 지난달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이 보고서가 도마에 올랐다. 보고서엔 후분양제를 도입할 경우 분양가가 오르고 공급량이 줄어든다는 내용이 담겼다. 후분양제 도입 시 건설사의 분양보증 업무를 맡은 HUG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대표적으로 논란이 된 내용이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건설사가 공사비에 이자비용까지 더해 분양가가 (선분양제를 할 때보다) 최대 7.8%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 대목이다. 소비자 대출 이자 부담은 900만~1100만원가량 오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등은 국감에서 “3~4% 수준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조달금리를 6.4~9.3%로 높게 적용했다. 분양가가 7.8%나 오른다는 분석은 조직적인 후분양 흔들기”라고 지적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14년 수원 호매실 지구, 세종시, 의정부 민락 등 5곳에서 후분양한 결과 분양가 상승률이 0.57%에 그쳤다는 통계도 제시됐다.

9일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보고서가 엉터리라며 성명을 냈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신용도가 낮고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의 사업이 축소돼 주택 공급량이 22%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보고서는 중소 건설사가 줄도산할 경우 주택 공급이 최대 76%까지 감소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최승섭 경실련 부동산팀장은 “근거로 삼은 중소 건설사 상당수가 대기업 계열사·자회사거나 건설사·금융권·공제회 등이 구성한 프로젝트 금융투자회사(PFV)다. 이 업체가 자금 조달 문제로 주택 공급을 줄이거나 줄도산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탁 HUG 기획조정실 부장은 “보고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다. 실제 후분양제 도입 시엔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후분양제 논란을 들여다보려면 선분양제부터 이해해야 한다. 선분양제는 건설사가 선호한다. 아파트를 짓기 전 분양해 소비자가 공사 기간(2~3년) 동안 내는 돈(계약금·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어서다. 주택보급률이 낮았던 1977년 도입해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선진국에선 드물지만 국내에선 40년 넘게 관행으로 정착됐다. 하지만 가장 비싼 물건을 정작 실물도 못 보고 사야 하는 아이러니 때문에 문제로 지적됐다. 최근 들어선 부동산 투기와 주택 공급 과잉, 가계부채 급증을 부른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건설사가 집값 상승기 때 주택 분양을 늘리고, 투기 수요는 분양권 전매를 통해 수익을 내고, 중도금·잔금을 내는 과정에서 은행 대출을 받도록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등장한 배경이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분양권 전매시장이 사라져 투기 거품을 잡을 수 있다. 건설사가 2~3년 뒤 준공 시점의 주택 경기에 맞춰 아파트를 분양하는 만큼 공급량을 조절하는 효과도 있다. 부작용도 있다. 건설사가 늘어난 금융비용을 분양가에 전가하면 분양가가 오를 수 있다. 선분양제 시스템에선 분양 뒤 2~3년 동안 중도금·잔금을 나눠 냈지만 후분양제에선 짧게는 몇 개월 내에 비싼 집값을 치러야 한다.

공급이 줄 여지도 있다. 아파트 지을 돈을 마련하지 못한 건설사는 사업을 할 수 없어 주택 공급이 원활치 않을 수 있다.

국회에선 지난해 12월 후분양제를 도입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법안을 발의한 정동영 의원은 “근본 대책인 후분양제 시행을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겼지만 서울 등은 아직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후분양제를 도입하더라도 사업자금 조달비의 분양가 전가, 주택 공급 축소 등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미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후분양제 장점엔 공감하지만 전면 도입하기엔 기업·소비자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공공 부문부터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부문에선 후분양하는 업체에 대한 주택도시기금 지원과 대출 보증 지원을 늘리고 공공택지를 우선 공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