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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성노리개'는 일본의 왜곡, "기생은 전통문화 아이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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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문화 지킴이 윤금식씨.김윤호 기자

기생 문화 지킴이 윤금식씨.김윤호 기자

 기생 문화 지킴이 윤금식씨.김윤호 기자

기생 문화 지킴이 윤금식씨.김윤호 기자

해어화(解語花).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이다.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인데, 기생(妓生)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생은 노래나 춤을 배워 술자리에서 흥을 돕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여자를 뜻한다. 술과 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생은 왠지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 껄끄러운 단어다.

기생 문화 지킴이 윤금식씨, "기생은 종합 예술인" #대구시 중구 종로에 전통풍류골목 사비로 만드는 중 #990여㎡ 규모로 내년 상반기 완공 #골목 곳곳에 기생 벽화, 기녀 복 체험장

기생들이 사용한 물품. 김윤호 기자

기생들이 사용한 물품. 김윤호 기자

그런데 이런 기생을 전통문화와 역사 아이콘으로 삼아 자랑스럽게 보존하고 알리자는 '기생 지킴이'가 대구에 있다. 주인공은 윤금식(61)씨다. 그는 거액의 사비를 들여 대구시 중구 종로에 기생을 주제로 한 '전통풍류골목'을 만들고 있다.

요정 가미에 있는 가야금. 김윤호 기자

요정 가미에 있는 가야금. 김윤호 기자

대구 기생 골목 관련 자료. 김윤호 기자

대구 기생 골목 관련 자료. 김윤호 기자

990여㎡ 규모로 내년 상반기 완공 예정이다. 골목 곳곳에 기생 벽화를 그려 넣고, 기녀 복 체험장을 만든다. '요정'을 형상화한 한옥도 짓고 있다. 골목 상가 벽엔 기생 사진과 다양한 기생 역사 자료를 전시할 예정이다. 대구의 관광 명소인 '김광석 길'처럼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생을 주제한 스토리텔링 공간인 셈이다.

대구의 요정 위치를 미니어처로 만든 전시품. 김윤호 기자

대구의 요정 위치를 미니어처로 만든 전시품. 김윤호 기자

윤씨는 "기생을 성 노리개, 단순 접대부로 생각하게 된 것은 일본 강점기 만들어진 왜곡된 사실들 때문이다."며 "일본에서 게이샤를 천시하지 않지 않느냐. 기생은 우리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종합 예술인이다. 전통풍류 골목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 기생 전시관. 김윤호 기자

가미 기생 전시관. 김윤호 기자

대구 기생 관련 조사 자료. 김윤호 기자

대구 기생 관련 조사 자료. 김윤호 기자

그는 대구시 중구 종로에서 한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며 그 옆에 가미라는 이름의 요정도 운영 중이다. 공식적으로 대구에 남은 마지막 요정이다. 2층 한옥으로 된 가미는 요정이자, 기생 전시관이기도 하다. 내부에 기생 사진·가야금·가체(加髢)·역사 문헌 같은 기생 관련 물품이 전시돼 있다. 과거 대구시 중구 종로에 있던 130여개의 속칭 기생집을 미니어처로 만든 전시품도 설치돼 있다.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 중인 과거 물품들, 김윤호 기자

가미에 전시 중인 과거 물품들, 김윤호 기자

직접 기생 관련 문헌을 조사하고 사람들의 증언을 찾아 만든 기생 역사 자료도 곳곳에 붙어있다. 고미술품도 기생 전시관에 가득 모여있다. 그는 "기생 관련 물품과 자료, 사진이 30여점, 고미술품이 100여점 전시돼 있다"며 "30여년 전부터 발품을 팔아 고미술품 경매장 등을 다니며 하나둘 사서 모은 것이다"고 했다. 이에 가미는 대구 중구의 관광 코스인 근대화 골목 투어의 한 코스로도 활용 중이다.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기생의 시초는 경상감영 같은 관에 소속된 관기다. 실제 감영에선 과거 관기를 전문적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기생들은 시·가무·붓글씨·판소리·서화 등을 배웠다. 종합 예술인, 문화인으로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1909년 관기 제도가 폐지됐다. 기생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윤씨는 "대구의 경우 기생들을 위해 성매매 집창촌이던 자갈마당 자리에 유곽 지가 조성됐는데, 일본 강점기 기생을 천시하고 성 노리개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며 "기생 이미지가 왜곡되기 시작한 배경이다"고 말했다.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가미에 전시된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 [사진 가미]

기생들은 생업을 위해 지금의 노조와 유사한 대구기생조합을 설립했다. 그러곤 고급 한정식집으로 나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1960년대 한정식집과 권번의 역할을 합한 요정의 출발점이다. 대구는 종로가 요정의 중심이었다. 130여곳의 요정이 있었고, 400~500명의 기생이 종로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당시 한 요정의 종업원으로 처음 대구 중구 종로로 왔고, 사실 마지막 기생들과 함께 생활했다고 보면 된다"며 "그때 기생에 대한 왜곡된 생각과 인식을 나중에 꼭 바로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가 전통풍류 골목을 만들고 가미에 기생 전시관까지 따로 운영하는 배경이다.

가미에 전시 중인 기생 관련 자료들. 김윤호 기자

가미에 전시 중인 기생 관련 자료들. 김윤호 기자

가미에 있는 전시품들 김윤호 기자

가미에 있는 전시품들 김윤호 기자

요정 가미 입구. 김윤호 기자

요정 가미 입구. 김윤호 기자

그의 마지막 이야기다. "대구 중구 종로를 일본 도쿄의 가부키초 못지않은 전국적인 문화 관광 명소로 만들 겁니다. 기생이라는 것 자체가 음지에 둬야 하는 천박한 문화가 아니라 양지로 끄집어내야 하는 우리의 옛 풍류, 전통문화의 아이콘이라는 점을 적극 더 알릴 겁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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