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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건륭제 화원서 만찬 … 시진핑, 트럼프에게 ‘황제 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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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중국을 첫 국빈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황제 만찬을 배풀 예정이다. 만찬 장소는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에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청(淸) 건륭(乾隆) 황제의 화원이던 건복궁(建福宮)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은 만찬 후 남쪽으로 200여m 떨어진 건륭제의 서재 삼희당(三希堂)으로 자리를 옮겨 담소를 나눈다. 집권 2기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이래 최강 권력자로 등극한 시 주석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제 코드’로 각종 현안을 조율할 전망이다.

5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 내 서육궁(西六宮) 벽을 인부들이 새로 페인트 칠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8일 자금성 내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건복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만찬을 주최한다. [신경진 특파원]

5일 중국 베이징 자금성 내 서육궁(西六宮) 벽을 인부들이 새로 페인트 칠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8일 자금성 내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건복궁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만찬을 주최한다. [신경진 특파원]

5일 찾아간 베이징 자금성은 사흘 뒤 방문할 트럼프 대통령 맞이 준비로 한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동선인 건복궁에서 삼희당이 위치한 양심전(養心殿)으로 이어지는 통로 좌우로 인부들이 ‘차이나 레드’ 페인트를 벽에 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중 정상 자금성에서 만남 #건륭제 서재 삼희당서 담소 나눠 #건복궁, 문 걸고 외교용으로 사용 #아버지 부시와 키신저도 찾은 곳 #오바마, 중난하이 영대서 달빛 산책

미국 백악관 격인 황제의 집무실 겸 숙소였던 양심전 입구에는 지난 2015년 10월 8일부터 새 단장을 위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만 서 있었다. 2년 넘게 새로 단장한 청 황제의 집무실을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을 첫 손님으로 안내하는 격이다. 두 정상이 차를 마시며 담소할 양심전의 서쪽 방 삼희당은 면적 8㎡의 작은 서재다. 하지만 역대 세계 최고의 예술품 수집가였던 건륭 황제가 극찬한 세 가지 희귀한 보물을 얻고 이름을 바꾼 곳이다. 건륭 황제는 서화 1만2000여 점, 청동기 4115점, 벼루 200여 개, 도장 1290여 개, 다수의 옥과 자기를 소장했다. 삼희당 담소에는 칭기즈칸 이래 최대 영역을 개척했던 건륭제의 업적을 3평 넓이의 방에서 트럼프에게 소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두 정상의 만찬이 예정된 건복궁 역시 건륭제와 관련이 깊다. 황제에 오르기 전 머물던 곳으로 즉위 뒤 4020㎡를 건복궁 화원으로 조성했다. 완공 170년 만인 1923년 화재로 전소했으나 2000년 홍콩 헝룽(恒隆)그룹 회장 천치쭝(陳啓宗)의 사비로 자금성 내에서 유일하게 중건한 건물이다. 외교 용도로만 사용될 뿐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금단의 지역으로 기자가 찾아간 5일에도 접근은 불가능했다. 이곳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참관을 위해 방중한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둥젠화(董建華) 정협 부주석이 만찬을 베풀었던 장소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71년 48시간 비밀 방중 기간에도 자금성을 찾았을 정도로 자금성 애호가다. 부시 전 대통령은 74∼75년 미국 국무부 베이징 연락사무소 소장으로 미·중 국교 정상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5일 오후 자금성 북쪽 성벽에서 바라본 태화전·중화전·건청궁. [신경진 특파원]

5일 오후 자금성 북쪽 성벽에서 바라본 태화전·중화전·건청궁. [신경진 특파원]

트럼프와 시진핑의 자금성 회동은 이번 방중의 백미가 될 전망이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가 통상적인 국빈 의전 외에 플러스 알파(a)가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자금성 회동을 의미한다. 미·중 간의 실질적 현안은 여기서 비공개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홍콩 명보는 자금성 관계자를 인용해 “삼희당은 면적이 넓지 않지만 옆에 ‘근정친현전(勤政親賢殿·건륭제의 부친 옹정제의 편액이 걸린 황제 집무실로 미국의 오벌오피스 격)’이 붙어 있어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고 대답했다.

중국이 ‘황제 코드’로 방문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환심을 산 전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8년 6월 25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현직 미국 대통령의 첫 방중이었다. 중국은 황제의 입성식으로 환대했다. 명(明)대에 개축한 시안(西安) 고성의 남문에 세계 최고의 환영 의례가 펼쳐졌다. 클린턴은 진시황의 병마용 대열 사이를 관람했다. 2014년 중국은 관계가 껄끄러웠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도 황제 코드를 활용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 정상 중 유일하게 오바마 대통령만 중난하이(中南海)의 영대(瀛臺)로 초청해 달빛 산책의 기회를 부여했다. 당시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황제가 사용하던 시설을 돌며 5시간여 대화를 나누고 신형 대국 관계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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