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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치다… 사회성 짙은 영화, 베를린 영화제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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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한 장면.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그르바비차'로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받은 보스니아 감독 야스밀라 츠바니치 감독이 트로피를 든 채웃고 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로 감독상을 받은 마이클 윈터버텀(왼쪽)과 매트 와이트크로스. [베를린 로이터=연합뉴스·뉴시스]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영화들이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를 강타했다.

19일 폐막한 올 영화제(제56회)에서 1990년대 초 발칸전쟁(유고 내전)의 비극을 다룬 보스니아 영화 '그르바비차(Grbavica)'가 최고 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또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미군이 보여준 인권유린을 고발한 영국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The Road to Guantanamo)'이 감독상을 받았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화씨 9/11(감독 마이클 무어)'이 2년 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 등 최근 국제 영화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룬 작품에 최고상을 주는 경향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영화제가 전통적으로 다른 영화제에 비해 정치적 색채가 짙은 작품의 손을 들어준 건 사실이지만 영화의 힘은 정치.사회적 발언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번 주말 관객 1100만 명을 돌파한 화제작 '왕의 남자'가 왕(연산군)과 당대의 권력층(중신)들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으로 중.장년층 관객의 관심을 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처럼 1000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들도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측면이 있었다.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 여성 감독인 야스밀라 츠바니치(31)의 처녀작이다. 발칸전쟁 당시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고통을 처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그르바비차는 옛 유고 연방 사라예보의 한 동네 이름. 영화는 12세 소녀와 홀어머니가 보스니아 내전의 끔찍한 후유증을 이겨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제작 취지도 정치적이다. 츠바니치 감독은 "라도반 카라지치, 라트코 믈라디치 등 전범들이 여전히 유럽에서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켜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만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10만 명을 살해한 전범 가운데 책임 있는 상당수가 아직 체포되지도 않았다"며 "이 영화가 보스니아 사태의 참상을 알리고, 나아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재촉할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간 디 벨트 등 독일 언론도 "샬로테 램플링 영화제 심사위원장 등 심사위원들이 올 행사에 강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도했다.

2006년 베를린은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비판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감독 마이클 윈터버텀, 매트 와이트크로스)'에게 감독상까지 수여하면서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미국이 쿠바에 있는 해병대 기지(관타나모)에서 운영하고 있는 테러 용의자 수용소의 인권유린을 고발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구성돼 현장감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았다.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인 무슬림 세 명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테러범으로 붙잡혀 2년간 수용소에서 학대를 받다 무혐의로 풀려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베를린 영화제 디터 코쉴릭 집행위원장은 개막 전 "관타나모 수용소에 항의하려고 이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했다"며 "영화제에 가장 초청하고 싶은 사람들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수감자들"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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