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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맥락 지켜야 ‘재생’이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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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32면

BOOK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란 말, 최근 몇 년 간 지겹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 된다. 도시재생은 도시 재개발과 명확히 무엇이 다른지, 재생이란 구호 아래 만들어진 장소들은 과연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말이다. 도서출판 살림이 펴내는 살림지식총서 561번째 책으로 나온 이 책은 ‘도시재생’과 관련한 의문점과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똑똑한 안내서다.

『도시재생 이야기』 #저자: 윤주 #출판사: 살림 #가격: 4800원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는 저자는 일단 ‘도시’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한다. 도시라고 하면 흔히 빌딩 숲이나 몇몇 유명 도시의 랜드마크를 떠올리지만, 사실 도시란 나와 이웃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삶의 공간이다. 서울을 비롯한 많은 도시가 ‘속도의 향상’ ‘규모의 증강’이라는 목적 하에 무조건적인 철거와 개발로 형성됐으나 이런 성장은 자원, 인구 문제 등으로 인해 한계를 맞았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나타난 대안이 도시재생이다.

키워드는 ‘맥락’과 ‘주체’다. 도시재생은 그 도시가 유지해 온 ‘맥락’을 지키면서 공간을 새롭게 바꾸려는 시도다. “공간 정체성의 보존,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중첩 속에서 과거 역사와 현재의 장소성, 예술성 등을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필수 요건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요건을 충족시킨 성공 사례로 6곳을 소개한다. 그 중 하나인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가로수 산책길)’는 20여 년 산업 유물로 방치돼 있던 고가 철도와 역을 공중 정원으로 바꾼 경우다. ‘하늘에 뜬 철로’의 낭만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살린 이 곳은 파리의 대표 관광 명소이자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산책로다.

화력 발전소의 외관과 내부를 최대한 보존한 런던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캐나타 토론토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도 좋은 사례다. 디스틸러리 지역은 1832년 대영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북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 있던 곳이다. 1900년대 들어 산업이 쇠퇴하며 버려진 양조장들이 갤러리와 박물관, 식당과 카페 등으로 되살아났다. 양조장 건물의 리노베이션을 최소화하고, 유기농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나 와인숍 등을 유치해 공간의 정체성을 지켰다. “과거를 완전히 허물어버리는 것도, 그것을 무작정 지키는 것도 아닌, 장소의 정체성과 가치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저자는 ‘무엇을,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만큼 중요한 것이 ‘누가, 누구를 위해 재생하는가’라고 말한다. 일본 나오시마와 ‘서울로 7017’의 모델이 된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 사례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이유다. 나오시마는 기능을 다한 제련소가 있던 황폐한 섬이었지만, 베네세홀딩스재단의 후쿠타케 소이치로 이사장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주도에 의해 자연과 현대미술이 조화를 이룬 ‘예술섬’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나오시마의 핵심은 몇몇 멋드러진 미술관이 아니다. 섬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목적 하에 진행되는 ‘이에(家) 프로젝트’, 섬 사람들의 삶을 주제로 펼쳐지는 예술제 등이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의 조건을 보여주고 있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는 행정기관이나 기업이 주도한 게 아니라 이 곳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한 일반 시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는 게 특징이다. 프리랜서 기고가 조슈아 데이비드, 창업 컨설턴트였던 로버트 해먼드를 중심으로 결성된 ‘하이라인 친구들’은 도시의 버려진 고가 철도를 아름다운 산책로로 만들기 위해 상상도 못할 싸움을 거쳐야 했다. 이들이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이권 다툼을 조정하며 장애물을 하나 하나 넘어가는 과정은 영화 속 첩보 작전만큼 흥미진진하다.

책에는 서울을 비롯해 국내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도시재생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단지 이렇게 단언한다. “행정 목표 이래 시간에 쫓기듯 진행되는 도시재생은 성공할 수 없다”고. 나오시마는 약 10년, 하이라인 파크는 15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OO가 생긴대’라는 소문이 들린 지 얼마 안돼 뚝딱 문을 연 많은 공간들은 10년 후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책을 덮으며 고민하게 된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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