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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르지 않으면 훗날 화 온다” … 보수 결집 정지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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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우택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우택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란).’

출당 발표 전 페북에 『사기』 인용 #탄핵 결정 239일 만에 당적 정리 #TK 지역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나” #‘보수 재편’ 홍 대표 리더십 시험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제명) 결정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자성어다. 중국 고전 『사기(史記)』에 나오는 구절로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1호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은 보수의 아이콘이 보수정당으로부터 축출당한 꼴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지 239일 만이다. 칼을 휘두른 홍 대표 측 인사는 “누군들 그런 악역을 맡고 싶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인사는 “10년 전 친노는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스스로 ‘폐족’이라고 하고 정치권에서 퇴장했다. 그게 역설적으로 부활의 실마리를 제공했는데 ‘친박’은 대통령 탄핵 사태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쳐 내야지”라고 했다. 보수 재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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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로선 ‘박근혜 출당’ 조치로 인해 당 장악력을 과시했다. 당초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이 연장되고 재판이 늦춰지면서 당내에선 “출당은 물 건너가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라는 ‘동정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청원 의원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 당시 홍 대표가 뭔가 자신에게 ‘청탁’을 한 듯한 ‘녹취록’이 있음을 시사하고 나서면서 친박계가 결집해 집단적으로 홍 대표를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홍 대표는 특유의 완력으로 당 안팎의 잡음을 누르며 ‘출당’을 밀어붙였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주인(박근혜) 없는 계파가 무슨 힘이 있겠느냐.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홍 대표도 가속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홍 대표는 “(여권은) 한국당을 ‘국정 농단 박근혜당’으로 계속 낙인찍어 한국 보수우파 세력을 모두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박근혜당이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때는 ‘탄핵심판 선거’나 ‘적폐청산’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홍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황교안 전 총리가 (서울시장으로) 지방선거에 나올 경우 탄핵심판 선거가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일단 홍 대표는 자신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위한 정지 작업 하나는 마친 셈이 됐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이란 명분을 깔아주면서 바른정당 통합파들의 길을 터줬다. 앞으로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을 비롯한 통합파 의원들이 합류할 경우 ‘보수 결집’이라는 명분을 갖추게 된다. 만약 바른정당에서 1차로 8~10명, 그리고 추가로 탈당이 이어지면 한국당(107석)은 의석이 115석 이상으로 늘면서 원내 1당이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121석)을 위협할 만큼 원내 발언권이 커지게 된다. 또한 통합파 이탈 시 현재 20석인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지위(20석)를 잃게 되고 원내 지형이 4당 체제에서 3당(민주당-한국당-국민의당) 체제로 바뀐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보수를 대표할 새로운 인물이 나오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독주하는 이상 홍준표 체제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이 몰고 올 후폭풍은 현재로선 짐작하기 어렵다. “정통 보수의 뿌리를 잘라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느냐”는 대구·경북 지역의 반감이 홍 대표로선 부담스럽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홍 대표는 ‘박근혜 절연’ 작업을 통해 보수의 적통을 잇고자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당 정비와 보수세력 재편 결과가 홍준표 리더십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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