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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하버드대 오버홀트 박사의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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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정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

지난 1일 오후 대구시 북구 산격동 엑스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박정희·김대중 리더십’ 국제 학술토론회. 윌리엄 오버홀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아시아센터 선임연구원이 ‘한국을 구한 대통령: 박정희와 김대중’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진보와 보수 세력 간 대결의 뿌리를 두 인물에서 찾았다. “한국은 지금 심각한 양분 상황이다. 이는 박정희와 김대중 사이에 벌어진 투쟁의 잔재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푸른 눈의 외국 학자가 박정희와 김대중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 갈등의 근원을 분석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토론회에는 전상인 서울대 교수,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인 최진 세한대 부총장, 마이클 로빈슨 인디애나대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학자와 청중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윌리엄 오버홀트 박사가 지난 1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윌리엄 오버홀트 박사가 지난 1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오버홀트 박사의 지적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진영 대결이 극심하다. 남북 갈등보다 남남(南南) 갈등이 더 심각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두 진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로를 ‘적폐 세력’ ‘국가 전복 세력’이라고 으르렁거린다. 두 진영의 대결은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된 지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오버홀트 박사의 강연은 우리 사회 갈등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을 어떻게 일으켜 세웠는지, 김 전 대통령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수 진영은 박정희 업적만큼 김대중 업적이 크다는 걸 인정하고, 진보 진영 또한 김대중의 민주화가 박정희의 성과 덕을 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올해는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다. 2024년은 김대중 탄생 100주년이다. 두 전직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에 즈음해 외국 학자가 던진 충고는 ‘투쟁의 돌부리’를 ‘번영의 디딤돌’로 바꿀 처방전처럼 들렸다. “한국 사회가 작금의 위기와 분열을 극복하고 더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두 전 대통령 간 투쟁이 만든 잔재를 극복하고 단합해야 한다.” 달가운 조언이다. 사실 외국학자가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 깨닫고 실천해야 할 일이었다.

김정석 내셔널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