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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이자 부담 경감의 그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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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진우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정진우 경제부 기자

정진우 경제부 기자

서민은 ‘중산층 이하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론 중산층 이상의 경제 여건인 사람이 스스로 서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국민 86%가 스스로 서민이라고 생각한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서민 중에도 ‘부자 서민’과 ‘가난한 서민’이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최근 금융당국이 잇따라 발표하는 ‘서민금융 강화책’에서 서민은 누구일까. 취약계층의 금융생활을 지원한다는 취지대로라면 ‘부자 서민’보다는 ‘가난한 서민’일 것이다. 문제는 서민금융 강화책이 도입 취지와 다르게, 부자 서민을 위해 가난한 서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각종 금리 인하 정책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 들어 시행했거나 시행 예정인 금리 인하 정책은 크게 ▶법정 최고금리 인하(27.9%→24%) ▶시중은행·저축은행 연체 가산금리 인하 ▶카드사 기본금리·연체금리 인하 등 세 가지다. 금리를 내리면 대출받은 사람의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즉각 나타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부금융협회의 시뮬레이션 결과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5%까지만 내려가도 대부업체 신규대출자 90만 명이 총 1481억원의 이자를 덜 내게 된다. 1인당 16만4500원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대출심사가 깐깐해진다면, 제도권 금융의 끝판인 대부업체의 대출심사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생긴다. 최고금리가 25%로 내려갈 경우 그 규모는 34만 명으로 추산된다. 부자 서민의 이자 부담은 줄어들지만, 가난한 서민은 이자 부담이 줄어들기는커녕 제도권 금융시스템 밖으로 내몰리게 된다.

카드사 대출금리·연체금리 인하 또한 마찬가지다. 카드론 금리가 1%포인트 내려갈 경우 약 2400억원의 이자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객의 이자 부담 경감은 카드사 입장에선 그만큼의 수익 감소다. 당연히 카드사는 대출심사 체계를 정비할 것이고, 카드론 고객 중 일부는 대부업체로 밀려날 것이 뻔하다.

모든 정책에는 명암이 있다. 금리 인하의 순기능은 서민 이자 부담 경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금리 인하→금융사 수익성 악화→대출심사 강화’로 인한 ‘대출 절벽’ 역기능도 존재한다. 가난한 서민이 겪게 될 이런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서민금융이라 할 만하다.

정진우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