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비역 장성 ‘낙하산 리스트’ 만들었던 국방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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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산하기관의 임원 자리를 특정 군ㆍ계급 출신 장성들에게 나눠줘왔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장성들이 산하기관 임원 자리를 꿰차는 ‘군피아(군인+마피아)’ 현상의 부작용은 특히 장병들의 복지를 책임지는 복지시설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국방부 인사기획관실 작성 문건 #예비역 장성 산하기관 취업 보장 #軍 “과거 규정, 현재는 아니다”

국방부 인사기획관실이 2012년 3월 20일에 작성한 산하기관 임원직위 지정 기준 관련 문서. 국방부 산하기관 임원 자리를 예비역 장성들에게 군별 출신별로 보장하는 지침이 담겨있다.

국방부 인사기획관실이 2012년 3월 20일에 작성한 산하기관 임원직위 지정 기준 관련 문서. 국방부 산하기관 임원 자리를 예비역 장성들에게 군별 출신별로 보장하는 지침이 담겨있다.

중앙일보가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으로부터 입수한 군 내부 문건 ‘산하기관 임원직위 군 지정 기준’에 는 국방부가 전체 28개의 산하기관 임원 자리 중 21개를 예비역 육군 장성 15명, 해군 장성 3명, 공군 장성 3명에게 배정한다고 적혀있다. 이 문서는 국방부 인사기획관실이 2012년 3월 20일에 작성한 ‘산하기관 임원 선임절차 개선방안 검토보고’에 포함돼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예비역 육군 소ㆍ중장에게, 국군복지단의 남수원골프장 사장은 예비역 공군 소ㆍ중장에게 지정하는 방식이다. 전체 임원 중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경우는 금융기업인 대한토지신탁의 사장 등 4곳이다. 나머지 3자리 중 2개는 '육군/연구원' , 1개는 '공무원' 출신에게 할당한다고 문서에 적혀있다.

◇군인공제회 10년간 7091억원 손실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김중로 국민의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인공제회의 지난 10년간 누적손실액은 7091억원이었다. 종결 사업 중 미회수금액도 3310억이었다.

군인공제회는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고 국군의 전력 향상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1984년 창립된 종합복지기관이다. 현재 17만 명의 군인이 은퇴 후 자금을 위해 이곳에 연평균 3000억원의 회비를 맡기고 있다. 그러나 복지증진이라는 창립 목적과 달리 회원복지사업비는 2012년 3100억원에서 지난해 230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군인공제회 홈페이지 초기화면. 공제회는 지난 10년간 약 7000억원의 손실(누적)을 기록했다. [군인공제회 홈페이지 캡처]

군인공제회 홈페이지 초기화면. 공제회는 지난 10년간 약 7000억원의 손실(누적)을 기록했다. [군인공제회 홈페이지 캡처]

군인공제회 이사장(현재 13대)은 모두 육군 소ㆍ중장이 맡았다. 인사기획관실이 작성한 지침대로다. 공제회 이사장은 국방부 장관 승인직이다. 임기는 3년이며 연봉은 1억5000만원 수준이다.

김중로 의원은 “군인공제회가 지난 10년간 회원들이 납입한 기금 중 수천억원이나 날려버렸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군인들이 평생을 모아 저축하는 돈을, 자리보전용 낙하산들이 관리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이 필요한 때다”고 말했다.

군인공제회 측은 “국방부 내부 규정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다. 적자는 경영 능력 부족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 또 7091억원 손실은 과거 군인공제회가 사업을 통해 벌어들였던 이익잉여금이 줄어든 것이지 기금을 날린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軍 골프장 사장도 예비역 장성이 독식

‘체력단련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군 골프장 사장도 모두 예비역 장성들이 맡아왔다. 국군복지단이 운영하는 골프장은 4곳이며, 각 군별로 따로 운영하는 골프장까지 모두 합치면 32곳이다.

1966년 개장한 태릉 골프장은 창립 이래 16대 사장이 모두 예비역 육군 준장이었다. 태능 골프장 관계자는 “군 골프장 별로 사장의 출신 군이 다르다. 우리 골프장은 역대 사장이 모두 육군 준장이었다”고 말했다.

예비역 장성들이 골프장 사장을 맡는 관행은 ‘제 식구 챙기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2회계연도 재정사업 성과평가 보고서’를 통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일정한 범위에 한해 전문 경영인 영입을 제안했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전문성·투명성 위해 낙하산 인사 끝내야”

국방부 검찰단장 출신인 김칠하(예비역 대령) 법무법인 벧엘 대표변호사는 “군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예비역 장성들의 산하 기관장 나눠먹기 행태에 대해 비판이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예비역 장성 선배가 기관장으로 가 있는 곳을 주무부처인 국방부 현직 군인들이 제대로 감독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 군인공제회의 경우 대부분의 직업 군인들이 돈을 맡기는 곳인데, 국방부가 이곳의 책임자를 육군 장성의 은퇴 후 자리 보전용으로 보장해주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고 주장했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도 “골프장 사장 등 군 전문성과 상관 없는 자리를 왜 장성 출신이 해야하는지 의문이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대변인실은 산하기관 임원 선임절차에 대해 “과거에는 그런 규정이 있었고, 지켜져 온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해당 지침은 국방부에서 만들어졌긴 했지만, 법적인 효력은 없다. 현재는 그 규정을 지키지 않고 산하기관의 임원들을 공개 공모를 통해 뽑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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