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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10월 수출 잘됐다더니 … 반도체 빼면 8억 달러 감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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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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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이 12개월 연속 증가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은 449억8000만 달러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 동월보다 7.1% 늘어난 수치로 지난해 11월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2개월 연속 증가는 2011년 12월 이후 약 6년 만이다. 전월(35.0%)보다 증가율 자체는 둔화했다. 1월 이후 이어온 9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 기록도 끝났다.

수출 12개월 연속 증가 빛과 그림자 #반도체 비중 처음으로 20% 넘고 #다른 품목 합친 수출 물량은 줄어 #민간소비 증가율 2분기보다 후퇴 #내수시장 회복세는 아직 더뎌 #“기업 압박해 투자 위축시키지 말고 #노동시장 개혁 등 체질 개선 나서야”

그런데도 놀라운 기록이다. 긴 추석 연휴로 조업일수가 전년 동월보다 4.5일이나 감소했지만 수출액은 30억 달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0월 일평균 수출액은 2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김영삼 무역투자실장은 “수출 비중이 큰 반도체나 석유화학 등 장치산업은 대부분 휴일 없이 가동했기 때문에 조업일수 감소의 영향을 덜 받았다”며 “큰 변수가 없는 한 12월 중순쯤 무역 1조 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이 늘어나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내용은 좀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수출 물량이 줄었다. 10월 수출 물량은 140억3000만t으로 전년 동월보다 9.1% 줄었다. 올해 들어 수출액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물량 증감은 들쑥날쑥하다. 4월과 7월에도 감소했다. 물량과 금액이 함께 늘어나는 성장형 수출 모형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부문장은 “물량 감소를 부정적으로만 볼 순 없지만 가격에만 기댄 수출 증가는 신흥국과의 경쟁에 따라 단기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10월 수출 단가는 17.8% 증가하며 물량 감소를 상쇄했다. 덜 팔고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던 건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반도체가 있다. 10월 반도체 수출은 94억8300만 달러로 전년 동월(55억9200만 달러)보다 38억4600만 달러(69.6%)나 증가했다. 전체 수출 증가분(30억 달러)보다도 많다. 달리 말하면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억 달러 줄었다는 의미다.

산업부는 13개 주요 품목(전체 수출의 약 80%) 중 7개 품목의 수출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반도체 다음으로 증가율이 높았던 선박(36%)은 수주 절벽에 빠졌던 지난해의 기저효과로 봐야 한다. 각각 10.3%, 6.1% 증가한 석유제품과 석유화학 역시 유가 하락에 기댄 측면이 크다. 또 다른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12.8%)와 자동차 부품(-28.4%), 무선통신기기(-29.0%), 가전(-41.6%) 등은 판매 부진,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수출이 크게 줄었다.

반도체 편중 현상은 올해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1~13% 정도였다. 그러나 올 1월 15%를 넘어선 데 이어 10월에는 21.1%를 기록했다. 20%를 돌파한 건 사상 처음이다. 반도체 경기가 나빠질 경우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데이터센터 확대, 스마트폰 성능 경쟁, 신산업의 성장으로 당분간 수요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지만 반도체는 사이클을 타는 대표적인 장치 산업이다. 비관론도 고개를 든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컴퓨터와 모바일 수요 둔화가 머지않았고, 내년엔 중국 업체의 시장 진출이 예정돼 있어 반도체 수급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반도체 외에도 주요 업종별로 수출 품목을 다변화하고, 신흥시장 진출을 촉진해 수출 생태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단 수출을 발판으로 곳곳에서 경기 회복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 역시 3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어 1.4%(전 분기 대비)를 기록하자 ‘3% 달성이 가능해졌다’며 고무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경제는 결코 한쪽 날개로 비상하지 않는다. 내수 회복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3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7%에 그쳤다. 지난해에 비하면 상황은 나아졌지만 2분기(1.0%)보다 후퇴했다. 가계부채 부담과 고용시장 여건을 고려할 때 당장 눈에 띄는 소비 증가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투자 심리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1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96.5로 기준선인 100에 못 미쳤다. 지난해 5월부터 18개월째다. 외환위기 전후 31개월 연속 기준치에 미달한 이후 최장 기록이다. BSI는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에 향후 경기 전망을 묻는 것으로 100보다 높으면 긍정적인 응답이 많은 것을 의미하고, 100보다 낮으면 그 반대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결국 일자리는 민간이 만드는데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으로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하면 투자 심리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인의 목소리를 듣고, 불확실성을 줄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기적 성장 목표보다 중장기적 체질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금융시장 성숙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없으면 정부가 말하는 혁신성장은 요원하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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