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에이즈藥 등 특허 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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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미국이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 등 치명적 질병 치료약에 대한 특허를 일부 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다른 나라 제약업체들이 이런 양보를 틈 타 돈벌이를 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의 빈국(貧國)에서 에이즈.말라리아.결핵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앞으로 치료약을 싸게 공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미국.브라질.인도.케냐.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번 세계무역기구(WTO) 의약품 협상의 핵심 5개국 대표들은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잇따른 회의를 가진 끝에 27일(현지시간) 사실상 이같은 합의에 도달했다.

현재 마지막 문안을 손질하는 단계이며, 작업이 끝나는 대로 전체 WTO 회원국들에 회람된 후 승인절차를 밟게 된다.

WTO는 치료약을 살 돈이 없어 죽음에 이르는 환자가 부지기수인 빈국들을 돕기 위해 선진국 기업들이 갖고 있는 관련 의약품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약품 협상을 지난 2년간 벌여왔다. 지난해 말엔 미국을 제외한 모든 회원국이 협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미국이 특허를 포기하면 브라질.인도 등의 제약업체들이 값싼 카피약을 마구 만들어 부당한 이익을 챙길 것이다""효능은 비슷해도 값이 싼 카피약이 선진국으로 밀수되면 세계 제약시장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미국의 우려를 감안, 합의안에는 카피약 제조를 빈국을 위한 경우로 국한하고 상업적 목적으로는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담을 방침이다.

이와 함께 미국 제약회사들의 요구대로 카피약 색깔을 특허약과 다르게 하고, 포장도 달리하는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약품 이슈는 WTO가 추진하고 있는 도하라운드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회원국들은 다음달 10~14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제5차 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이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다른 협상들도 진전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해 왔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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