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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동성 4년째 내리막 … 교육 격차 해소 적극 나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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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12면

사회통합, 갈 길 먼 대한민국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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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의 휴학생인 김현철(26)씨의 꿈은 ‘자기 힘으로 벌어 살 수 있는 직업을 얻는 것’이다. 현재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다. 편의점에서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 노량진의 공무원학원에 다닌다. 대기업 입사는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 일찌감치 접었다. 그에게 대기업은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나 가는 곳이다. 어학연수나 해외여행은 꿈꾸기 어렵다. 그가 받는 시간당 임금은 올해 최저임금(6470원)보다 30원 많은 6500원이다. 식사는 3500원짜리 컵밥으로 때우는 일이 잦다. 김씨는 “상황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며 “대학을 나온다고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닌데 굳이 큰돈을 들여 졸업장을 따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씁쓸히 말했다.

월소득 700만원, 100만원 가구 #두 그룹 사교육비 차이 8.9배 #더 나은 사회 만드는 기초 요소 #시민성은 73점으로 높은 수준

김씨처럼 신분 상승 등의 기대감을 접은 이들이 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지수 분석 결과 지수의 구성요소 중 한 가지인 사회이동성 수준은 지난해 50.5점으로 나타났다. 2013년 60점이던 것에서 4년째 하락세다. 전대성 서울대 지능정보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금수저’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이 공고해지면서 사회이동성이 더 약화되고 과거보다 계층 간 통합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계층 이동의 기초가 되는 교육 기회조차 불평등한 상황인 만큼 당분간 계층 이동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실제 우리 사회의 교육 기회가 균등하지 않다는 점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가 대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 7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4만3000원에 달하는 반면 월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 사교육비는 5만원에 그쳤다. 두 그룹 간 차이는 8.86배다.

영유아기 교육 투자가 격차 해소 도움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들은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교육이야말로 신분 상승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핵심 열쇠란 생각에서다. 교육 격차 해소책의 대표 주자는 1960년대 시작된 미국의 헤드스타트(Head Start) 정책이다. 만 3~4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 기회를 주는 이 정책은 전액 연방정부 예산으로 충당된다. 저소득 가정 어린이들은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을 통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교육을 받게 된다. 수학과 영어는 물론 피아노 등 예체능 교육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전체 미국 빈곤 가정의 만 3~4세 아동 중 40%이상이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다. 진학 단계별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한 예로 초·중등 교육 단계에서는 ‘모든 학생의 성공법(Every Student Succeeds Act·ESSA)’과 ‘타이틀 I 지원금(Title I)’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고등교육에 진입하는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펠그랜트 장학금(Pell Grant)’을 비롯한 다양한 면학 프로그램이 지원된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 지원 프로그램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영유아기나 소년기에 적극적으로 교육 투자를 하는 일의 장기적 성과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우리나라도 공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바우처(Voucher·이용권) 제도를 도입해 저소득층 유소년들의 교육 기회 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올해 초 현재 추진 중인 혁신 교육 정책들을 ‘더불어숲 교육’으로 명명하고, 교육 불평등과 격차 해소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더불어숲 교육’이란 학생 한명 한명 마다 소중히 여기면서 함께 숲을 이뤄 가는 교육을 하겠다는 의미다.

행복지수 개선, 체감행복도는 낮아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지수 분석 결과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사회 구성원 간 신뢰 수준과 적극적인 사회참여 정도 등을 의미하는 결속지수는 지난해 51.2점이었지만 결속지수의 주요 구성요소인 시민성은 72.9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서다. 2014년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 조사 결과에서도 우리 국민의 시민성이 전 세계 주요 선진국 평균(74점)보다 높은 75점으로 나타났다. 높은 시민성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물론 사회통합을 강화하기 위해선 높은 시민성 못지않게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정책 등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번 조사에서도 시민성은 높게 나왔지만 정작 노조나 시민단체, 동창회 등 각종 공적·사적 단체에서의 활동을 의미하는 참여 점수는 17.7점에 그쳤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노조나 정당 등을 통해 활발히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 제도화돼 있는 북유럽 국가들의 참여 수준이 대체로 높다”며 “임시적인 게 아닌 제도화된 시민들의 의견 소통 창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적극적으로 공공정책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우리 국민이 느끼는 행복의 정도가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년 62.3점이던 행복지수가 이번엔 63.2점이 됐다.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13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체감행복도는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윤건 한국행정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은 “전 세계 사회학자에 의해 수행되는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WVS)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들의 행복도는 70점대 초·중반 정도”라며 “국민 개개인의 사회 참여와 공정한 교육·취업 기회 등 개인의 행복과 사회통합 강화를 위해선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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