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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가장 잘못한 일은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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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간부와 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법행위를 강요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를 폭로한 국정원 간부는 또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못한 일은 원세훈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8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유성옥(60) 전 단장은 지난 20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A4용지 40장 분량으로 작성한 ‘최근 시국 관련 소명과 소회’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단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2월 12일 청와대에서 원세훈 신임 국정원장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 공동사진취재단 ]

그는 “원 전 원장은 부임하자마자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종북세력 척결이며, 이와 함께 보수 우호세력 육성과 국정홍보를 국정원의 ‘3대 업무’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며 이같이 밝혔다.

유 전 단장이 수감 전 남긴 장문의 글을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적법 범위 내에서 일할 것 같으면 국정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국정원은 법을 초월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원 전 원장이 정보 업무에 대한 이해가 없는 비전문가라고도 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이 정치에 관여하면 국정원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된다는 것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유 전 단장은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법원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에도 이런 내용을 그대로 적시했다.

유 전 단장은 원 전 원장이 재임 중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이버 업무’에 매달렸다고 기억했다. 그는 “원 전 원장은 광우병 괴담 유포의 진원지가 ‘다음 아고라’이며, 소위 종북세력들이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를 주도하지 못하면 정국 안정과 대한민국의 체제유지도 어렵다고 판단한 듯한 언급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원 전 원장은 ‘좌파 네티즌’을 제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했으며 사이버상에서 보수세력의 절대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외곽단체(민간인 댓글부대)도 운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기억된다”고 했다.

유 전 단장은 “(국정원 재직 중) 가까운 사람들끼리 ‘김정일 체제보다 원세훈 체제가 더 철저하고 잔혹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원 전 원장은 ‘보안’이라는 미명하에 직원들의 모든 언행을 철저히 감시했고, 직원들에 대한 미행, 감청, 거짓말탐지기 의무화 등을 하면서 실로 엄청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전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 전 단장은 사이버 정치글 게시 활동 및 보수단체를 동원한 관제시위, 시국 광고 등 오프라인 활동을 전개했다. 또 관련 비용으로 국정원 예산 10억여원을 지급해 국고손실을 초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유 전 단장은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에서 2000년ㆍ2007년의 1ㆍ2차 남북정상회담에 실무 책임자로 참여한 남북관계 전문가다. 2007년 12월 노무현 정부 마지막 정기인사 때 2급으로 승진해 심리전단장에 부임했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2010년 11월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 충북지부장으로 좌천된 유 전 단장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2월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으로 이동하면서 국정원에서 퇴직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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