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문가 좌담] '이공계 공직 진출'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공계 출신의 공직 진출 확대 방안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를 거쳐 확정됐다. 이에 따라 행정고시와 기술고시를 통합하고, 2008년까지 이공계 출신 비율을 신규 채용 5급(사무관) 공무원은 50%, 3급(부이사관) 이상은 30%까지 높여야 해 공직 사회에 일대 변화가 일 전망이다.

이 같은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침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을 전문가 좌담을 통해 살펴본다.(편집자)

▶ 김광웅 교수=이공계의 공직 진출 확대는 시대적인 요청이다. 그러나 이를 추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각 계층의 할당제 요구, 정부 기관들의 저항 등 만만치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현재 공직 할당제의 경우 여성.장애인에 이어 지역 할당제까지 나올 조짐이다. 또 건설교통부나 과학기술부 등 몇몇 부처를 제외하고, 이공계가 거의 없는 부처들이 '행정직도 소화하지 못하는데 기술직을 늘릴 수 없다'고 버티면 어떻게 하겠느냐. 이런 요구나 저항들을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가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 이기준 회장=대부분의 국제관계 이슈가 기술과 연관된 문제로 흐르고 있다. 공무원의 직무를 분석해 이공계 출신이 필요한 곳을 찾아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이 앉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공직 직무 분석 결과 60% 이상에 이공계통이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공계 출신 비율이 25%인 우리의 경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속철도 계약 때 이공계 출신이 없어 예산을 다섯배나 더 들였다는 사실은 선진국에선 생각하기 힘들다.

▶ 金교수=각 부처에 행정직과 기술직이 모두 앉을 수 있는 복수직이 있다. 그러나 기술직으로 보임한 비율은 38.8%에 불과하다. 감사원의 경우 복수직 아홉자리가 있는데 두자리만 기술직이 앉아 있는 실정이다.

▶ 이상희 의원=그렇다. 고위 공직의 직무 분석을 통해 자격 기준을 법적으로 명확히 해 놓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아무나 들어와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없게 되지 않겠는가. 이는 공무원의 국제화.전문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지금은 첨단 분야의 기술을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설명을 해도 이를 이해하는 공직자가 극소수다. 특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다른 자리로 이동해 버린다. 결국 정부가 첨단기술 경제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 조정원 총장=일정 관리를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장관 등 인사권자가 지속적으로 챙겨야만 제대로 시행될 것이다. 현 정부의 의지와도 관계되는 일이다. 기득권층에 불리한 정책이 시행되는 마당인데 그런 의지마저 없다면 저항이 거세지고, 그러다 보면 흐지부지될 것이 뻔하다.

▶ 李회장=일부 부처의 경우 직무 분석을 먼저 한 뒤 이공계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직무 분석과 할당제 시행을 동시에 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해당 부처에 직무 분석을 맡겨 놓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직무 분석도 제3의 전문기관이 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 趙총장=이공계 출신의 등용을 워낙 적게 하다 보니 절대 인원이 적어 오늘날 긴급 수혈을 해야 할 지경이 됐다. 정부의 계획은 상당수의 이공계 출신을 특채로 뽑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 숫자가 늘어날 때까지 별도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마저 소수의 이공계 출신이 과거에 받았던 불리함을 그대로 받을 것이다. 기존 공무원과 특채 공무원의 공동 교육 프로그램 등을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직무교육을 할 때 각 대학의 특수 대학원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 金교수=이공계의 공직 진출 경로를 다양화해야 한다. 즉, 고시.인턴제.계약제.특채 등 여러 방식을 각 자리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단순히 이공계 비율만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미국에는 '포토맥 피버'라는 것이 있다. 워싱턴에 있는 강 이름으로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도 미국 상.하 양원에서 인턴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미국은 공직에 자리가 생기면 공채도 하지만 대졸 출신을 대상으로 2년제 인턴을 뽑아 테스트한 뒤 발령을 내기도 한다. 우리도 정부 중앙청사가 있는 광화문을 빗댄 광화문 열풍이 불었으면 한다. 또 미국처럼 공직의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

▶ 李의원=고위 공무원들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미국 백악관의 환경수석을 만난 적이 있는데 환경 관련 업체에 종사한 경력의 전문가였다. 백악관은 그런 자리에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한 후보 자격을 인사 내규에 아주 상세하게 규정해 놓았다. 그렇게 들어온 전문가들은 길게는 대통령 세명의 임기를 넘기기도 한다. 우리도 전문 분야의 고위 공직에 대해선 미국처럼 해야 한다. 이 자리, 저 자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미국의 전문가와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는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 金교수=마스터 플랜을 짜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특히 이공계 할당제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예술.체육 등 다양한 계층도 함께 배려해야 공직의 전문화를 제대로 꾀할 수 있다. 무조건 이공계만 고집해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 趙총장=이공계 출신이 공직에 진출했을 때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대학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베이징(北京)대 이공대를 방문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교육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1990년 중반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정부가 고등교육에 관심을 갖고 대학을 적극 지원했다. 지난해 베이징대 이공대 1백주년 행사에 국가 서열 10위 이내의 인사가 모두 나와 축하한 것이 그 예다. 더 놀라운 점은 커리큘럼이다. 이공계 학생들이 배우는 과목 상당부분이 인문사회 분야인 철학.문학.심리학 등으로 채워진다. 종합적인 시야를 갖춰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지식을 전수하고 종합적인 사고가 가능한 방향으로 교육 프로그램이 바뀌어야 한다.

▶ 李의원=앞으로는 사회 전체가 교육의 장이다. 지식이 급속하게 변하기 때문에 평생 업그레이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년퇴직이 아니라 능력이 뒤떨어지면 퇴직하게 되는 '정능퇴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도층이 민주화를 주장하기 때문에 '민주흥국'인 셈이다. 반면 중국은 '과교흥국', 즉 과학기술교육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것이 국가 경영의 기본 철학이다. 사회 전체의 지표는 그 나라의 지도층이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 李회장=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려면 미래의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한다. 지식정보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 인프라와 정보 인프라다. 이런 지식.정보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선 정부가 인재, 특히 이공계 인재의 양성과 등용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이공계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국가의 미래 발전과 번영을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한다.

▶ 金교수=행정학 과목을 수강하는 이공계생이 상당수 있는데 무늬만 이공계라는 데 문제가 있다. 전공과목 공부는 내던지고 고시에만 매달린다. 이런 이공계생은 공직에서 필요로 하는 이공계 인재가 될 수 없다.

▶ 李의원=기획예산처.재경부.감사원 공무원은 주로 회계학에 능숙한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불경기 대책을 세울 때 재정지출 확대, 콜금리 인하, 시설자금 지원 등 주로 돈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미국은 경제가 어렵다면 즉각적인 대응은 시장에 맡기고 정치.행정지도층은 기술적 패러다임을 바꾸어 경제의 틀을 바꾸려 한다. 새로운 경제틀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불경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셈이다. 이제는 이공계 출신을 기술 고도화 사회의 인프라로 보아야 한다. 정부의 변화를 청와대가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청와대부터 모범적으로 이공계 출신을 몇% 뽑는다고 나섰으면 좋겠다.

▶ 趙총장=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강단에 많이 서야 한다. 이론 중심의 박사학위 소지자도 필요하지만 실무 경험이 많고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도 강단에 서야 폭넓고 생생한 교육이 이뤄진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는 매년 7~8대의 1의 입학 경쟁률을 기록하며, 졸업생은 취업이 거의 보장된다. 우수한 교수진과 커리큘럼이 있기 때문이다. 장래가 보장되고 좋은 보수가 기다린다면 왜 이공계를 마다하겠는가. 교육프로그램의 혁신이 필요하다.

정리=박방주.심재우 기자<bpark@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사진 설명 전문>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무분석, 조직의 저항 해결 등 산적한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의견을 나누고 있는 참가자들. 왼쪽부터 이상희 의원, 조정원 총장, 이기준 회장, 김광웅 교수. [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