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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프로 '꿩 먹고 알 먹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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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방송사들이 몇 달간 공들여 찍은 드라마를 TV에서 달랑 한번 틀고 만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하지만 이런 걱정은 접어둬도 좋다. 요즘은 지상파에서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을 케이블 TV로 넘겨 재방.삼방하거나, 아시아 각국의 방송사에 팔아 추가 수입을 올리는 게 다반사다.

그 뿐인가. 최근 1~2년새 인기 프로의 경우 DVD나 모바일 서비스 등으로 재가공해 매니어급 시청자들의 호주머니를 공략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DVD로 나온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 모바일 전용 버전을 내놓는 SBS ‘요조숙녀’, 만화책으로 출간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DVD로 출시된 MBC ‘옥탑방 고양이’.(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방송 프로에도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 바람이 부는 것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한다는 뜻.

방송사로선 기왕에 돈 들여 만든 프로를 두번, 세번씩 우려먹을 수 있으니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도 좋아하는 프로를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DVD=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KBS '겨울연가'의 열혈팬 중엔 개인적으로 방송사에 비디오 주문제작을 의뢰한 이들이 상당수였다. 60분짜리 비디오 한편 값이 2만2천5백원이니 20편 전체를 사려면 비용이 무려 45만원이나 든다.

하지만 KBS미디어가 지난해 봄 처음으로 낸 '겨울연가' DVD는 전편이 담긴 6장짜리 세트가 9만9천원선. 비디오에 비해 화질이 현저히 좋은데다 가격도 4분의1 이하여서 지금까지 1만 세트 이상이 팔려 대박이 났다.

첫 DVD 출시로 단맛을 본 KBS미디어는 내친 김에 올해 6월 2년전 방영됐던 '가을동화'의 DVD를 내놓았다. 비단 드라마뿐 아니다. 지난 14일엔 음악 프로인 '윤도현의 러브레터'도 1주년 기념공연 실황에다 방송에 공개되지 않은 김제동.배칠수.박경림 등 출연자들의 열연 장면을 추가해 DVD를 선보였다.

하지만 방송사들이 인기 프로라고 해서 무작정 DVD를 내는 것은 아니다. 20~30대 시청자층이 두터운 프로만 골라낸다. 아직 DVD 플레이어 보급률이 그리 높지 않은 데다 만만찮은 값을 치르고라도 DVD를 소장하려는 팬들은 주로 젊은 세대이기 때문.

중장년층이 주 시청자층인 SBS '야인시대'의 DVD가 별 재미를 보지 못한 반면 '올인'DVD는 꾸준한 판매를 보이는 건 그래서다.

이에 따라 MBC의 경우 드라마 DVD를 낼 때 아예 팬클럽 사이트에 공동구매를 제안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열렬한 매니어층을 확보했던 '네 멋대로 해라'가 대표적인 경우.

'네 멋대로 해라'의 연출자 박성수 PD는 팬클럽의 의견을 참조해 DVD를 방송에 나간 내용과 전혀 다르게 편집한 이른바 '디렉터스 컷'을 구성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모바일 서비스 및 기타=지난해부터 방송 프로를 활용한 모바일 서비스의 개발도 활발하다. 예고편이나 방송분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건 기본. 드라마 장면을 휴대전화의 배경화면으로, 드라마 OST를 휴대전화 벨소리 또는 컬러링(통화대기음)으로 제공하는 등 서비스의 내용은 가지가지다.

이처럼 기존의 방송 내용을 재가공하는 것 외에 최근엔 SBS의 '요조숙녀'처럼 모바일 서비스만을 위해 드라마 한 회분을 새로 찍기도 한다.

KBS 뉴미디어국의 김태관씨는 "앞으로는 휴대전화가 TV와 마찬가지로 방송을 보는 창(window)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며 "SBS처럼 모바일 전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인기 프로의 작가들이 방송 원고를 묶어 앞다퉈 책으로 출간한 데 이어 최근엔 만화까지 등장해 화제가 됐다. 주간 시청률 조사에서 베스트 5에 꼽힐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는 MBC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지난달 일곱개의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책을 내놓은 것.

이 프로의 김윤대 PD는 "오락 프로의 경우 DVD 등으로 재가공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만화로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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