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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폐쇄→연장→조기폐쇄? 월성1호기 인근주민들 '뒤숭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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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앞바다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왼쪽부터 월성 4호기, 3호기, 2호기, 1호기.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앞바다에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왼쪽부터 월성 4호기, 3호기, 2호기, 1호기. 프리랜서 공정식

"원전이 안전하다고 운영 기간을 늘린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불안하다고 조기 폐쇄한다고 하니까 주민들이 어느 말을 믿고 산답니꺼. 살기 겁난다 아잉교."
경북 경주시 양남면 바닷가에서 생선 손질을 하던 80대 할머니는 바다 쪽으로 눈에 들어온 월성 원자력 발전소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생계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2022년까지 수명 연장된 경북 경주시 양남면의 월성원전 1호기 #문재인 정부 '탈원전 로드맵'에 따라 조기 폐쇄 가능성 높아져 #주민들 "박근혜 정부선 연장, 문재인 정부선 폐쇄…신뢰 잃어" #인근 상인들 생계걱정도…"상생 기금, 운영 방침 필요해" #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바닷가에서 마을주민이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바닷가에서 마을주민이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박근혜 정부인 2012년 11월에 30년 설계 수명이 끝났지만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2년 11월까지 연장 운영을 승인해 수명이 연장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문 대통령 임기(2022년 5월)가 끝나기 전에 조기 폐쇄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24일 국무회의에서 신규 원전 계획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을 담은 '탈원전 로드맵' 안건을 심의·의결함에 따라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여부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상당수 주민들은 계획대로 2022년까지 월성호기를 가동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원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조기 폐쇄 주장을 하고 있다.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홍보관이 한산하다.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홍보관이 한산하다. 프리랜서 공정식

이날 찾아간 경북 경주시 양남면의 월성원자력발전소 홍보관은 방문객이 없어 썰렁했다. 인근 음식점도 활기를 잃었다. 홍보관 앞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황모(53)씨는 "원전이 위험하다, 폐쇄한다 등 말이 많으니까 홍보관을 찾는 사람이 확 줄었다. 인근 주민 외에는 관광객이 없어 판매가 반 토막 났다"고 말했다.

월성1호기

월성1호기

월성 1호기 인근 주민들은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현재 월성 1호기에는 한수원 직원 210명과 협력업체 직원 190여 명 등 모두 4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월성 원전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승희(41)씨는 "관광객도 없고, 그나마 직원들이 좀 찾았는데 월성 1호기까지 운행을 중단하면 가게 문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23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빈 가게가 창고로 사용되고 있고 마을은 한산한 모습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23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빈 가게가 창고로 사용되고 있고 마을은 한산한 모습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월성 1호기의 설계수명이 완료된 2012년에 가동 연장을 결정하면서 주민들이 받기로 했던 '지역발전 상생협력 기금'이 제대로 지급될지를 주민들은 우려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5년 경주시와 3개 읍면(양남면·양북면·감포읍)에 1310억원의 지역발전 상생지원 협력기금을 배정했다. 현재 63%인 825억원이 지급된 상태다.

김학철 양북면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정부에선 월성 1호기 폐쇄를 논의하면서도 나머지 기금을 언제까지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백민석 양남면 발전협의회장도 "정부가 월성 1호기 수명을 연장할 때 주민들의 여론을 물어서 결정했으니 이번에도 주민들과 공청회를 하고 의견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면 좋겠다"고 말했다.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마을은 한산한 모습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주변 마을은 한산한 모습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월성 1호기가 하루빨리 폐쇄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지난 22일 문 대통령은 전력수급이 이상없는 게 확인이 되면 조기 폐쇄한다고 했다. 앞서 6월에도 똑같이 말하지 않았느냐. 지난 여름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는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원전 수명연장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온 지역 주민 황문희(65)씨도 "지진 등으로 원전 안전에 대한 주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폐쇄할 거면 빨리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앞에 월성 1호기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상여가 놓여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24일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본부 앞에 월성 1호기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는 상여가 놓여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전문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정부 정책의 연속성과 신뢰 문제를 지적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면서 원전 안전 문제가 크게 부각되다보니 원전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주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전문성을 가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법적절차를 거쳐 내린 결정이 정부의 정책 방향으로 바뀌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주=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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