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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세상을 향한 창이 된 동네 책방…달콤·따뜻한 소설에 관한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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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학이 있는 주말 

섬에 있는 서점 표지

섬에 있는 서점 표지

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루페

점수를 매기라면 모든 항목에서 골고루 최고점을 주고 싶은 소설이다. 재미있고 어렵지 않은 데다 교양소설 면모를 갖춰 독자의 지적 허영심도 슬슬 건드린다. 소설에 관한 소설,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 끊임없이 수많은 다른 소설들의 내용이나 인물에 대한 언급, 작품 품평까지 종종 나온다. 주인공인 인도계 홀아비 A. J. 피크리는 우리로 치면 서치(書癡)나 백면서생쯤 되는 인물. 명문 프린스턴을 나왔지만 세상 물정과 담을 쌓고 사는 에이제이는 교통사고로 대학 동창 아내를 잃고 갈수록 괴팍해지는 중이다. 아내의 고향인 미국 북동부 엘리스 섬에서 ‘아일랜드 서점’이라는 상상력이 극도로 부족해 보이는 이름의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그에게 뜻밖의 아이와 새로운 소울 메이트가 생기는, 전체적으로 달달 코믹하고 따뜻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세계 어디서나 주력 독자군인 20~30대 여성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는 작품일 듯싶다. 뭔가 결핍 상태여서 기자도 걸려들었을 테니 어딘가 허전한 40~50대 중장년 남성도 타깃 독자층에 포함시킬 수 있다.

물론 세상에 완벽 혹은 절대는 흔하지 않은 법. 톨스토이의 고전도 흠잡을 데가 있지 않나. 책장을 덮고 나니 소설 속 현실이 지나치게 달콤하고 낙관적이었던 것 같다. 독자의 현실 인식을 흐릴 수 있다, 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을 법하다. 밋밋한 책 제목도 불만이다. 한글 번역판 제목은 퉁명스럽고, 영어 원서 제목 ‘The Storied Life of A. J. Fikry’는 소설 전체를 간명하게 요약했지만 역시 흥미롭지는 않다. 본문의 재미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니 역시 칭찬?

검색해보니 저자는 하버드에서 만난 현재의 파트너(영화감독 한스 카노사)와 영화 시나리오를 함께 쓴 적이 있다. 그래선지 인물들 간의 대화가 통통 튄다. 특히 에이제이와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 로먼이 알게 된 지 4년 만에 해산물 식당에서 나누는 ‘썸타는 대화’가 압권이다. 저자 개브리얼 제빈은 ‘한국의 딸’이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다. ‘감사의 말’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미국 이름인 걸로 봐서, 어머니가 어려서 입양된 것 같다. 그래서일 텐데 에이제이에게 생긴 사랑스러운 마야는 흑인 여자아이다. 정치적으로도 영리한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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