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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검찰 '동향 수집' 폐지 가닥…범죄정보기획관실 재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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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하지만, 최근 내가 한 일도 일상적인 사찰의 일종으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라 민감한 문제였던 거다.”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서울중앙지검 범죄정보과 #자체 생산 '동향정보' 줄이고 범죄 정보 분석 강화 #국정원·기무사 등 '국내정보 수집 제한' 맥락 같아 #'정보 기획' 부정적 인식 씻으려 명칭 변경도 검토

검찰직 공무원 A씨는 지금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한때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의 IO(Information Officer·정보관)로 근무했다. 대검 범정기획관실은 검찰 내 유일무이한 정보 부서로 전국 검찰의 범죄 관련 첩보와 주요 기관·인사들의 동향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밖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관과 내근 직원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다.

A씨는 국내 동향 정보를 주로 수집했다. 일일·주간·월간 단위로 수집한 정보를 보고했다. 국세청이나 경찰, 기업의 대관 업무 담당자, 언론인 등과 정보를 교류했다. 주 1회 정도씩 이들과 만나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조율'했다. 범정기획관실의 정보는 자체 분석을 거쳐 검찰총장에게 보고됐다. 중요 정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도 올라갔다. A씨는 "범죄와 관련이 없어도 주요 기관이나 기업, 단체, 인물의 동향 정보는 꽤 가치 있는 정보로 꼽혔다”고 말했다.

검찰 정보 쥔 '총장의 오른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

대검찰청이 주요 부서 중 하나이니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동향 정보 수집 기능을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 7월 말 대검은 범정기획관실 소속 정보·수사관 40여 명을 일선 검찰청으로 발령내고 업무를 잠정 중단시켰다. 당시 총장 내정자였던 문무일 검찰총장의 지시로 ‘검찰총장의 오른팔’로 불려 온 범정기획관실의 기능 재검토를 시작했다.

새 범정기획관실의 모습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의 범죄정보수집 기능 재편을 지시했다. 지난 17일 대검찰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의 범죄정보수집 기능 재편을 지시했다. 지난 17일 대검찰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범정기획관실은 1·2담당관 체제로 되어 있다. 1담당관은 부정부패·경제 사범·언론·정보통신을 포함한 각종 공개정보를 수집해 관리했다. 2담당관은 공안·선거·노동·대공·사회단체 및 종교 등 사회 전반의 동향을 주로 수집했다. 문제가 된 동향 정보 수집은 주로 2담당관의 업무에 해당한다. 수집된 정보 중에는 과장되거나 특정 이해 관계에 의해 왜곡된 것도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쟁적인 정보 수집으로 민간 영역의 ‘고급 정보’에 사정기관 정보관들도 뛰어들었다.

검찰은 범죄 혐의와 상관없이 각 분야의 동향을 수집하는 업무는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검찰 관계자는 “특정 소수 계층에서만 정보를 독점했던 과거에는 정보관들의 역할이 범죄 수사에 상당한 기여를 했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가 유통되고 있는 현시대에는 이런 방식으로 수집된 정보의 양과 가치가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집된 정보가 범죄수사에 적절히 활용됐는지를 사후 평가해 이를 기록화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의 정보가 권력의 사적 도구로 남용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검찰은 조만간 1, 2담당관의 업무 영역을 확정할 계획이다. 팀장격인 5급(사무관) 인선은 이미 끝냈고, 6·7급 실무관을 선발하고 있다. 대검과 함께 특수부 산하에 정보 수집 부서를 따로 두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의 정보 수집 기능도 같은 방향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정보기획' 오해 없애려 개명(改名) 추진

범죄정보기획관실의 명칭도 바뀔 전망이다. 기존의 명칭의 중앙에 있는 ‘정보기획’이란 표현이 정보를 가공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을 반영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획관’을 대체할 직책명을 내부 공모 중이다.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 있는 눈' 이란 제목의 검찰상징 조형물. [중앙포토]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서 있는 눈' 이란 제목의 검찰상징 조형물. [중앙포토]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7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범죄와 관련된 업무에 집중하자는 게 취임 때부터 생각”이라며 “외부기관으로부터 이첩된 첩보나 자체 수집 정보에 관해선 검증하는 절차와 사건이 끝난 뒤 재점검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사찰 논란' 국정원·기무사도 '동향 수집' 폐지

검찰 뿐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가 기관·단체나 개인의 동향 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금지하는 등 주요 사정기관에 탈정치화 바람이 불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국내정보 담당관(IO)과 관련부서를 폐지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보고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법에 명시된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 이외의 국내정보 수집 지시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징계하도록 ‘국가정보원 직원 복무규정’을 고치기로 했다.

국가정보대학원에서 특강을 마친 국가정보원 신입 요원들이 `정보는 국력이다`는 원훈(院訓)이 걸린 복도 계단을 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국가정보대학원에서 특강을 마친 국가정보원 신입 요원들이 `정보는 국력이다`는 원훈(院訓)이 걸린 복도 계단을 오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정부에서 야당 정치인들을 비방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의 방송 출연을 방해한 혐의(국정원법 위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은 국내 정보를 수집하는 국익전략실 팀장으로 일했다. 추 전 팀장은 국정원 정보를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보고해 국정농단에 이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군 정보기관인 국군기무사령부도 고위공직자의 동향 파악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1처'를 전면 해체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1처를 해체해 관행적인 동향 수집 업무를 폐지하고 기무사를 군사정보 위주의 보안·방첩 중심으로 재편하는 조직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바닥 정보'에 강한 경찰도 정보 수집 기능 재편을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범죄첩보 수집이나 방첩 등의 명목으로 민간인의 동향을 감시하거는 행위가 민주화 30년을 맞은 최근까지도 근절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공공안전을 위해 대테러 활동이나 대북 활동은 이뤄져야 하지만 사찰의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민간영역의 정보 수집 활동은 최소화하는 게 시대의 흐름에 맞다는 게 검찰 개혁의 큰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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