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시각장애 소년, 장애인 택시 안 ‘공포의 30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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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삽화=김회룡기자ase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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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서울맹학교 고등부 2학년 A군(16)은 지난달 15일 끔찍한 공포를 경험했다. A군과 같은 시각장애인에게 이동 편의를 제공하는 장애인 택시(12인승 승합차) 안에서였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A군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다.

“다른 길로 가 달라” 하자 기사 욕설 #“내려 달라” 요청에도 그냥 달려 #112에 신고한 뒤에야 내려줘 #정신적 충격에 입원치료 받아 #경찰, 감금 혐의로 기사 입건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오후 3시40분쯤 A군은 학교가 있는 서울 신교동으로 장애인 택시를 예약했다. 하교하는 대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택시기사는 올 2월 경기도 내 한 장애인 생활이동지원센터의 채용공고를 통해 입사한 B씨(37)였다. B씨는 지체 장애 6급 장애인이다. 팔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힘든 정도다. A군은 9년간 해당 센터를 이용해 왔는데 둘은 초면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경로 안내 문제였다.

A군이 교통체증을 우려해 학교 인근 자하문 터널을 지나 내부순환로를 이용하는 우회로를 안내했지만 B씨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B씨는 차량용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그대로 달렸다. A군은 터널 안 소음이 들리지 않자 불안한 마음에 B씨에게 현재 위치를 물은 뒤 자하문 터널로 가줄 것을 다시 한번 더 요청했다. 하지만 B씨는 내비게이션 안내대로 가고 있다고 설명한 뒤 경로를 변경하지 않았다.

A군이 재차 우회로 이야기를 꺼내자 B씨는 갑자기 “불법 유턴을 하라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언성을 낮춰 달라”고 하자 욕설이 담긴 막말이 시작됐다. 공포감을 느낀 A군은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대로 차를 몰았다.

종로 낙원상가에 신호대기하던 틈을 타 A군은 스스로 차량 잠금장치를 해제한 뒤 문을 열고 도로 위로 나왔다. B씨는 직전 “가(내리)라”고 소리질렀고, A군은 안전한 곳에 정차한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 위였다. 운전기사도 바로 내렸다. 2차 사고를 우려한 둘은 다시 차에 올랐다. A군은 이후 “내려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계속 달렸다. 이런 돌발상황 발생 시 B씨는 센터에 즉시 보고했어야 하지만 보고하지 않았다. A군은 택시 안에서 112에 신고한 후에 서울 신당동 약수역에 내릴 수 있었다. 경찰이 약수역에서 A군을 인계받았다.

A군은 택시를 탄 30분이 공포 그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날따라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하는 흰 지팡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A군은 경찰 안내에 따라 지하철에 탑승한 뒤 수서역에서 부모를 만났다. A군이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던지 물에 젖은 휴지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는 게 가족의 설명이다.

A군 가족은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수사에 나선 성남수정경찰서는 감금 혐의로 B씨를 입건해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이동센터 측은 B씨를 해고했다. A군의 어머니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해 현재 치료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시각장애인의 경우 폐쇄된 공간에서 폭언을 듣고 생소한 공간에 남겨지는 경험을 할 경우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했다.

해당 이동센터 관계자는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교육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B씨의 전 직장동료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해 그런 것 같다. B씨 역시 장애인으로 이번 사건으로 실직 후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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