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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산대반점의 비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3호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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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이 끝나고 다시 써 본 왕희지의 '쾌설시청첩'.

중추절이 끝나고 다시 써 본 왕희지의 '쾌설시청첩'.

얼마 전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다녀왔다. 국보급 서화를 모은 특별전을 보기 위해 칭화대 류스(劉石) 교수 부부, 내 서화 스승인 청무화(曾木華) 선생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45점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역시 중국의 서성이라 불리는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이었다. 글자 수는 28자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특별한 기운을 뿜어냈다.

사실 이 작품은 왕희지의 친필이 아니다. 동진 시절 활동했던 그의 작품은 대부분 소실돼 지금 보는 것은 주로 당 초기에 쓰여진 모사본이다. 당 태종(太宗)이 당시 서예가들에게 왕희지의 필적을 정밀하게 묘사할 것을 주문해 만들어진 것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선본(善本)’인 셈이다. 만약 그의 지시가 없었더라면 후대 사람들은 왕희지의 작품을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청의 건륭(乾隆) 황제는 그중 특별히 아끼는 서첩 3권을 모아 자금성 내에 ‘삼희당(三希堂)’이라는 작은 서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 중 하나인 쾌설시청첩을 직접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과연 국보급 작품의 호소력은 상당했다. 우리뿐 아니라 이곳을 찾은 저명인사가 적지 않았다. 관람실은 중추절 연휴를 앞두고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질서 있게 줄을 서서 천천히 관람했지만, 소요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내 곁에는 류 교수가 있었고, 내 뒤에는 전문가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고대문물 전문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감상하다 보니 되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를 정도였다. 요즘 시대에 서예 애호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데 참 감사한 일이다.

입장 후 30분쯤 지났을 때 우리는 마침내 쾌설시청첩 앞에 당도했다. 역대 황제들의 총애를 받고 수집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진귀한 작품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 무척이나 흥분됐다. 더구나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단단히 준비를 한 상황이었다. 이 작품을 몇 번이나 모사했던가. 온 맘을 다해 관찰하며 그 오묘한 필체를 조금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관람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작정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똑바로 서서 제대로 마주 보기도 전에 이별을 고해야 하는 슬픔이란. 짧은 만남이 아쉬울 뿐이었다.

3시간가량 인파 속에서 시달리고 호텔로 돌아오니 피로가 만만치 않았다. 숙소는 고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랜드 호텔 타이베이(원산대반점)으로 역시 유명 관광지 중 하나였다. 나는 대만이 낯선 류 교수와 청 선생을 위해 산 위에 자리 잡은 이곳을 택했다. 평소 대만에 올 때면 머무르는 단골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옛 모습 그대로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내면서도 왁자지껄한 시내 한복판과는 달리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총지배인 역시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어 언제든 서예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작은 책상을 준비해 주었다.

문화여행인 만큼 문방사우는 물론 서첩까지 모두 챙겨 왔다. 이 소중한 창작의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자그만 문예포럼을 열었다. 진귀한 작품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회상하면서 손에 든 술을 음미하며 왕희지의 서간이며 소동파(蘇東坡)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토론하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바닥에도, 소파 위에도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들이 쓴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니 글은 정연하면서도 조리있었다. 적잖은 수확이었다. 나는 우리가 사용한 붓을 시작으로 먹 등 서예 도구를 정리했다. 65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을 더럽힐 순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호텔에 도착해 웅장한 계단 위로 깔린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다 보면 마음엔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여러 차례 방문하다 보니 모두 자잘한 단편이 되어 뒤섞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특히 40년 전 일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지난번 20년 전 말레이시아 총리 부부 이야기도 모자라 40년 전 이야기라니. 어젯밤 일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부디 노인성 치매의 조짐은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포기하진 말아 달라. 인기스타 저우룬파(周潤發)에 관한 이야기니까.
<다음에 계속>

천추샤 (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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