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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들은 씁쓸한 이야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3호 29면

삶과 믿음

올해는 뜻하지 않게 조계종 해외연수를 두 번이나 가게 됐다. 이번엔 몽골과 러시아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몽골에서 러시아로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다. 국경 넘기가 매우 고생스러웠다.

지난봄에 다녀온 동유럽 국가들은 검문검색 하나 없이 버스 타고 쉽게 국경을 넘나들었는데, 몽골에서 기차 타고 넘어가는 러시아 국경은 정말이지 삼엄했다. 화장실도 잠그고, 개를 시켜 수색하고, 기차 천장까지 뜯어 댔다. 무슨 용의자라도 된 것처럼 우릴 위축시켰다. 화장실 문은 몇 시간째 잠겨 있고, 심야에 검문은 계속되고, ‘이런 시베리아 횡단열차, 다신 안 탈 테다’고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래도 무사히 국경을 넘어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도 보고, 한없이 펼쳐지는 자작나무 숲도 감상하니 불편한 기차여행도 차츰 괜찮아졌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하자 러시아에 14년 살았다는 현지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여기서 재밌는 얘길 들었다. “러시아는 부정부패가 매우 심한 나라입니다. 어느 정도인지 질문을 통해 알려 드릴 게요. 자, 러시아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일까요?”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얘길 들어서인지 금세 답이 나왔다. “푸틴이요.” “예, 맞습니다. 러시아에서 가장 부자는 푸틴 대통령입니다.” 그냥 던져 본 말인데 정답이란다. 움찔했다. “그럼 이르쿠츠크시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일까요?” “이르쿠츠크 시장?” “예, 정답입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쏟아졌다. “자 그럼, 이르쿠츠크주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주지사겠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란다. 답을 못하자 현지 가이드 왈, “전 주지사입니다. 바뀐지 얼마 안 됐거든요.” 크크 참나,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가 아는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 톨스토이의 나라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국제정세를 좌우할 만큼 강대국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러시아혁명 꼭 100주년 되는 해다. ‘계급철폐’와 ‘무산대중의 해방’을 내세우며 황제(차르)를 폐위시킨 러시아혁명 이후, 러시아는 그 이념을 얼마나 실현했을까? 이미 오래전에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했다고 해도 왠지 러시아를 생각하면, 좀 더 공정분배가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현지 가이드의 말만으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러시아에는 여전히 황제가 있는 듯하고 소도시마다 작은 황제가 있는 듯했다. 아직도 혁명의 길은 먼 것 같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얼마나 좋은가. 선거제도를 통해 잘못하면 4년, 5년마다 바꿀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전에 유럽을 다녀왔을 땐 우리나라가 좀 더 성장했으면 싶었는데, 이번에 러시아를 보고 오니 우리도 공정한 사회인지 좀 더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동유럽에선 경제성장과 높은 문화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면, 러시아에선 ‘공정’과 ‘부패 없는 공직자’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영 스님
조계종에서 불교연구·교육을 담당하는교육아사리. 저서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것들』. BBS 라디오 ‘좋은 아침, 원영입니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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