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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국 쑨쓰둥 남매에 뚫린 대북 제재 … 석탄 수입대금으로 미사일 부품 북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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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8월 11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던 캄보디아 국적의 화물선 지슌(捷順)호가 나포됐다. 같은 해 7월 23일 북한 해주항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선박에선 2300t의 철광석 아래 3만 개의 북한산 로켓추진수류탄(RPG-7)이 숨겨져 있었다. 유엔 제재 이래 최대 규모의 북한 무기밀수 적발이었다. 북한인 군관·선원 23명이 탑승한 선박의 소유주는 홍콩 광성(廣勝)무역, 대표는 쑨쓰훙(孫嗣紅)이란 중국 국적 여성이었다. 2012~2014년 사이 이 배의 소유주였던 지슌해운 대표 쑨쓰둥(孫嗣東)과 홍콩의 같은 아파트 단지에 주소지를 둔 여동생이었다.

쑨 남매 관련된 무역업체 10여 곳 #400억대 물품, 중국 내부 거래 위장 #유엔 “중국 등 소재 43곳 제재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전문가 패널이 남매를 추적했더니 오빠 쑨쓰둥은 2013년부터 북한에 2854만 달러(약 327억원)어치의 전자제품을 보낸 단둥(丹東) 둥위안(東源)산업의 대표였다. 2016년 6월엔 탄도미사일 부품으로 전용할 수 있는 레이더 항법장치 79만 달러어치도 선적해 보냈다. 미국 민간 고등방위연구센터(C4ADS)는 중국 기업 등록부상에서 지난 8월 유엔과 미국 재무부가 제재 리스트에 올린 북한산 석탄의 최대 수입업체, 단둥지청금속과 같은 e메일로 등록한 사실도 찾아냈다. 하지만 단둥 둥위안을 포함해 쑨쓰둥 남매와 관련된 10여 개 중국·홍콩 소재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유엔 전문가들은 북한이 쑨쓰둥과 같은 무역업체들을 통해 미사일 부품과 전자장비 등을 수입하면서 제재를 회피하는 게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광물 수출대금 대신 필요한 물품을 받는 방식으로, 마치 중국 기업 내부 거래인 양 위장해 추적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엔 전문가 패널은 쑨쓰둥 남매의 회사를 비롯한 북한·중국·말레이시아 소재 43개 기업을 미국 재무부가 추가 제재 대상 명단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쑨쓰둥은 2015년 뉴욕 플러싱에 둥위안 엔터프라이즈라는 기업을 설립했고, 롱아일랜드에 100만 달러가 넘는 고급 주택을 구매해 거주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주변 이웃들을 통해 “약 40세인 쑨쓰둥이 임신한 부인, 두 자녀와 지냈고 부인과 자녀들은 남겨둔 채 지난 8월 회사를 정리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며 “수개월 전부터 미국 수사기관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C4ADS는 “쑨쓰둥이 미국에서 업체를 설립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물품을 거래하거나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종업원의 비자를 신청하는 등 자유롭게 활동했다”고 지적했다.

유엔 전문가들은 중국 민간 회사들이 소유·운영하는 여러 개의 북한 내 은행들도 찾아냈다. 나진·선봉 경제특구 내 홍콩 우나포르테(香港旺福特有限公司) 소유의 둥다(東大)은행, 다롄 금무역거래소가 설립한 중국상업은행 등이다. 중국이나 북한 어디에서도 설립신고나 인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 내 은행을 설립한 후 중국 내 은행들과 국제 금융거래를 하면서도 제재 대상에선 빠졌다. 중국 당국은 유엔에 “이들 은행은 북한 내의 기업활동 허가나 은행 설립 및 영업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답변했지만 폐쇄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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