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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본 정치인들의 제각기 다른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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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이 개봉 이틀 만에관객 수 100만을 돌파하며 흥행하는 가운데 이를 본 정치인들이 각기 다른 감상평을 내놓고 있다. 백성과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데는 뜻을 모았지만, 그 원인과 해결책을 바라보는 눈은 사뭇 달랐다.

박원순 "무대책 명분이 국가적 재난 초래한 것"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금융콘퍼런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9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금융콘퍼런스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은 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SNS)에 '남한산성'을 관람했다면서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끝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얼마든지 외교적 노력으로 사전에 전쟁을 예방하고 백성의 도탄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민족의 굴욕과 백성의 도륙을 초래한 자들은 역사 속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면서 그 원인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무대책의 명분을 꼽았다. 이어 "오늘의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우리의 힘을 키우고, 외교적 지혜를 모으고, 국민적 단결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치욕을 겪더라도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실리적인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에 맞서 '청 태종에 엎드리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수치'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척화파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국민적 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홍준표 "군주가 무능하면 피해는 백성의 몫"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소방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소방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4일 SNS에 "남한산성을 보면서 나라의 힘이 약하고 군주가 무능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전란의 참화를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무능과 신하들의 명분론 때문"이라며 "비록 다소 역사의 왜곡은 있지만 북핵위기에 한국 지도자들이 새겨 봐야 할 영화라고 본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무능한 군주'와 '신하들의 명분론'을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원인으로 꼽았다. 박 시장과 같이 척화파 지도자들을 비판했지만 여기에 군주의 무능도 더해졌다.

장제원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는 무능하고 모호한 임금"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 청문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 청문회'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5일 SNS에 "예조판서의 명분(청에 대한 강경론)과 이조판서의 실리(청에 대한 화친론)를 집중비교 조명하며 힘없는 조선의 설움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 명작"이라고 '남한산성'을 극찬했다.

장 의원은 "두 사람 모두는 조선의 충신이었다"면서 "조선의 백성들을 죽음과 고통과 굴욕으로 몰아넣은 자는 명분도 실리도 타이밍도 모두 잃어 버리고 어떤 것도 결단하지 못한 무능하고 모호한 임금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대한민국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지도자의 모호성은 국가를 더 큰 위기에 빠뜨린다는 것"이라면서 "결국, 이념도 실리도 명분도 아닌 민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주화파도, 척화파도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었을 뿐 백성을 힘들게 한 자는 '모호한 임금'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명분론을 비판한 박 시장, 홍 대표와 달리 '민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았다.

박영선 "북핵위기와 견주는 건 호사가들의 얘기일 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달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해법, 도시재생 문화재생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지난달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의 해법, 도시재생 문화재생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남한산성'과 현 시대를 견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박 의원은 5일 "병자호란의 시대상황을 지금 북핵위기와 견주는 것은 호사가들의 얘기일뿐 적절치 않아 보인다"면서도 "대사가 주는 여운이 정치란 무엇인가, 외교란 무엇인가, 지도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낡은 것들이 사라져야 원하는 세상이 온다' '준 것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는 대사에 가르침이 있다며 "민들레와 같은 끈질김을 생각하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고 전했다.

하태경 "병자호란은 정보기관이 없었던 탓"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의원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이 지난달 28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의원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굴욕의 가장 큰 원인은 총체적 국력과 국방력 차이"라면서도 "상설정보기관만 있었어도 정세 판단의 무능은 없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 의원은 5일 "조정에서 이 정보가 맞네, 저 정보가 맞네로 싸운다. 기본적인 정보가 빈약해 공론이 모아질 리가 없다"며 "표면적으로 척화파, 주화파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근본 원인은 정보의 부재"라고 색다른 평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정원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는 국정원 개혁에 찬성한다"면서도 "문재인 정권은 국정원 개혁보다는 MB 잡는데 더 정신이 팔려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황동혁 감독 "서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공감하는 이야기엔 편 들어"

영화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황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척화파와 주화파,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았다"며 "어떤 시대, 어떤 컨텍스트에 놓이냐에 따라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럼에도 이 논쟁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서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서로가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살짝 편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의견 대립으로 반목하는 지금 정치인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며 "서로 존중하는 그 마음을 영화 구석구석에 놓치지 않고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영화 '남한산성'은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이 폐위된 후 일어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반정으로 집권한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 쫓겨 남한산성에 고립돼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 속에 번민하던 47일을 그렸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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