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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다치게 한 이웃집 찾아간 가족…유·무죄 갈린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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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애완견을 다치게 한 이웃의 집에 항의하러 찾아갔는데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집 안까지 들어갔다면 주거침입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신발을 신은 채 거실에 들어가 멱살을 잡은 다른 가족에게는 주거침입과 폭행죄가 인정됐다.

문 열려 있는 이웃집에 들어가 #말로만 항의한 건 "정당행위' #신발 신은채 "너도 맞아봐라" #멱살 잡으면 '주거침입' 유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50부(부장 신광렬)는 이웃 최모(74)씨의 집에 들어가 5분 동안 말로만 항의하다 돌아간 한모(52·여)씨에게 무죄를, "너도 맞아봐라"며 멱살을 잡고 때리는 시늉을 했던 한씨의 남편 박모(52)씨에게는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 6월 내려진 이 판결은 지난달 21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확정됐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지난 2015년 6월의 어느 일요일, 서울 강남구의 한 빌라에 사는 박씨는 "2층에 사는 최씨 할아버지가 우리 집 강아지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다"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강아지가 다친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박씨의 딸(24)이었다. 빌라 현관 앞에서 강아지가 최씨를 향해 짖자 최씨가 강아지를 '혼내준' 것인데, 어떻게 다치게 했는지는 두 이웃의 주장이 갈린다. 최씨는 강아지를 발로 찼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박씨 가족들은 "최씨가 칼로 코 부위를 찌른 것이다"고 주장했다.

강아지가 아파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얼굴을 보니 피를 흘리고 있어 깜짝 놀란 딸은 최씨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최씨의 집은 제사 준비로 절반 현관문이 절반 정도 열려 있었다. 뒤따라 올라온 어머니 한씨와 함께 두 사람은 최씨에게 큰소리로 항의를 했다. 당시 최씨는 손에 식칼을 들고 있었고 이를 본 딸이 잡아 빼앗았다. 5분 가량 언성을 높이던 모녀는 강아지 치료를 위해 스스로 최씨의 집을 나왔다.

문제가 된 것은 딸의 전화를 받고 한 시간 뒤 도착한 박씨의 방문이었다. 박씨는 문을 두드려 최씨의 부인이 열어주자 허락 없이 신발을 신은 채 거실까지 들어갔다.그는 쇼파에 앉아있던 최씨에게 "너도 맞아봐라, 너의 손자도 데려다 패 줄까"라고 소리치며 한 손으로 최씨의 가슴 부분을 잡고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고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박씨의 주거침입과 폭행 혐의를 유죄로 봤다. 다만 "폭행의 정도가 중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애완견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벌금 50만원으로 형량을 줄여줬다.

박시의 부인 한씨와 딸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설령 동의 없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최씨의 범죄행위와 한씨의 행위 사이의 시간적·장소적 근접성, 집 안으로 들어간 방법, 집 안에서 한 행동 등에 비추어 이같은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모녀가 최씨의 집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최씨 부부가 저지했다는 사정은 찾아볼 수 없고, 집 안에서 한씨가 최씨를 폭행하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았고 5분 정도 말로 항의하다 스스로 집 밖으로 나왔다"는 점을 고려했다.

강아지를 다치게 한 최씨도 재물손괴죄가 인정돼 벌금 70만원이 확정됐다. 최씨는 박씨의 딸이 휘두르는 칼을 막다가 손에 상처를 입었다는 주장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직 경찰관인 최씨가 중요한 피해 사실을 늦게 알렸다는 점 때문에 재판부의 의심을 샀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당일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피해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례적이고, 애완견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범죄사실로 고소를 당하고 경찰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은 후 5일이 지나서야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를 제기한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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