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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건강, 지켜야 산다] #25 노인에서 더 중요시 되는 개념 '아증후군적 우울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류장훈 기자]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우리나라에서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올해 우리나라가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20%인 상태)에 진입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이후 건강분야에서 많이 나오는 키워드가 있는데요. 바로 '정신건강' '우울'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떤 전문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예전엔 오래 사는 것이 목표였는데, 오래 살 수 있게 되니 정신이 몸을 따라가지 못한다"고요.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정신건강, 특히 우울증은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예방·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이번 '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의 주제는 노인 우울증입니다.

노인 우울증은 정신건강의학계에서도 매우 관심있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노인 우울증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노년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에서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노인의 경우에는 우울증으로 진단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심각성을 더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 곳곳에 노화가 진행됩니다. 힘도 점점 빠지고 몸의 반응도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신체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런 이유 때문에 행동 반경도 줄어듭니다. 우울증이 있어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 거려니'하고 나이탓을 하기 쉽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노인 우울증을 두고 "전형적이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단도 쉽지 않은 것이죠.

우울증의 심각성은 생각보다 큽니다. 노인의 인지기능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실제 다른 질환의 위험인자로 꼽히기도 하죠. 치매가 대표적입니다.

우울중 같은 정신질환이 동반된 환자의 경우 50~91%가 향후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치매 위험이 우울증이 없는 사람의 2~3배에 달합니다. 우울증 환자 중 18~57%는 우울증 증상이 완전히 없어진 이후에도 치매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신체 건강과도 밀접하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건강하지 않은 신체는 우울증 위험을 높입니다. 특히 심뇌혈관질환의 경우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는 많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이 신체건강을 망치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잘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도시와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 118(도시 69, 농촌 49)을 대상으로 노인의 신체적 건강상태와 우울, 건강행위에 대해 분석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신체 건강상태, 우울, 건강행위 간의 상관관계를 제시합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들 노인은 우울정도가 낮을수록 건강행위를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건강행위에 유의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정신적 건강상태, 즉 우울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배우자 유무, 동거 유무, 월평균 용돈, 교육정도, 종교 유무, 지각된 건강상태, 신체적 건강상태, 우울 등의 변수 중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이죠. 또 건강행위를 잘 할수록 신체적 건강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우울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되고, 이런 경향이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입니다. 이 연구는 노인 우울증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노인의 경우 우울증이 생기기 전에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그래서 정신건강의학계에서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노인 아증후군적 우울증'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노인은 우울증이 있어도 진단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 단계에서 발견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위험을 미리 인지하자는 겁니다.

우울증을 판단하는 기준 중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4(DSM-IV)'이라고 있습니다. 9개 증상 가운데 5개 이상의 증상이 2주 동안 지속되고, 이런 상태가 이전의 기능수준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변화가 있을 경우 진단합니다.

9개의 증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증상 가운데 1(우울한 기분) 2(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은 꼭 포함돼 있어야 하죠. 실제로 노인 우울증 환자는 주요우울장애 진단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단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일상생활 기능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자살이나 다른 사망 위험인자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노인 아증후군적 우울증'의 진단 기준은 여기서 조금 완화된 것입니다. 아직 표준적인 진단기준은 없습니다. 하지만 몇 개의 진단기준이 연구자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죠.

첫번째는 1, 2번의 핵심 증상이 없어도 9개 증상 중 최소 2개 이상의 증상이 최소 2주 동안 대부분 혹은 항상 존재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두번째 기준은 증상의 지속기간, 연속성에 대한 기준 없이 1, 2번의 핵심 증상 중 하나는 꼭 포함하되 최소 2개 이상의 증상이 있는 경우를 아증후군적 우울증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1, 2번의 핵심 증상 중 하나는 반드시 포함하면서 9개 증상 중 5개 이상의 증상이 있는 경우가 진단기준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은 아증후군적 우울증이 반드시 우울장애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합니다. 노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처럼 취업, 임신 등 드라마틱하게 기분을 전환하는 사건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살펴본 대로 노인 우울증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사소한 변화라도 주의깊게 살펴보고 적절한 조치와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울증의 경고신호, 아증후군적 우울증. 이 진단기준에 견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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